“예전엔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팀을 이끌며) 항상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너무 성적에만 매년 매달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리빌딩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한 달 전 IBK기업은행이 봄배구 탈락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정철 감독은 담담하게 속내를 밝혔다.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코트 위에서 불같이 호령하던 기존의 모습과는 달랐다. 이 감독은 어쩌면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었음을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IBK기업은행을 창단 때부터 지휘해온 이 감독이 일선에서 물러난다. IBK기업은행은 2일 “이정철 감독의 보직을 ‘고문’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구단 관계자는 “이정철 감독이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번 시즌이 끝난 후 팀에 피로감이 누적되며 구단 차원에서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IBK기업은행이 2011년 창단된 다음부터 8년 가까이 팀을 이끌며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에서 각각 세 번씩 우승을 차지했고, 2013년부터 6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며 명실공히 최고의 팀으로 거듭났다. 창단 2년 차인 2012-13시즌에는 프로스포츠 사상 최단기간 통합 우승을 이뤄내는 역사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IBK기업은행은 올 시즌을 4위로 마감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6라운드 막판까지 GS칼텍스와 3위 자리를 두고 다퉜으나 막판 뒷심이 부족했다. 외국인 선수 어나이가 득점 1위(792점)에 오를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지만, 팀 전체 공격 성공률은 37.09%로 5위에 그쳤다.
IBK기업은행은 이 감독에게 “팀을 명문 구단으로 도약시킨 노고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며 그동안의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창호 IBK기업은행 단장은 “구단을 원점에서 들여다보겠다”며 “선수들이 신바람나게 배구를 하고 팬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주는 배구단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방극렬 이현우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