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의 선택이 한 시즌의 결과를 뒤바꿀 수 있다. 이 긴박한 승부에서 상대 공격수를 홀로 두 명이나 상대했다. 자신이 뚫리면 곧바로 실점할 수 있는 절체절명 위기에서 최선의 판단으로 승리를 견인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고의 수비수.’ 또 한 번 증명했다. 2018-2019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 상대인 토트넘 홋스퍼를 2대 1로 잡은 1일 홈구장 안필드에서 리버풀 수비수 버질 반다이크가 그랬다.
반다이크는 리버풀의 공격과 수비 모두를 주도했다. 수비에서 5백으로 내려앉은 토트넘을 상대로 라인을 끌어올릴 때 패스의 꼭짓점 역할을 맡았다. 강력한 전방압박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해리 케인에게 공이 투입되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했다. 루카스 모우라, 케인은 공중볼 경합에서 반다이크를 이겨낼 수 없었다.
리버풀의 세트피스도 부쩍 파괴력이 늘었다. 지난 시즌 리버풀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가 세트피스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시즌은 다르다. 반다이크 중심의 세트피스 전술이 가동되며 코너킥은 리버풀의 강력한 공격루트 중 하나가 됐다. 토트넘 수비수들이 반다이크를 여럿 견제했다.
반다이크는 1-1 동률을 이루던 후반 39분 팀을 결정적인 실점 위기에서 구해냈다. 케인이 수비진영에서 공을 잡아 빠르게 손흥민에게 연결했고, 손흥민은 이를 원터치 연계를 통해 무사 시소코에게 전달했다. 선두 맨체스터 시티를 추격하기 위해 승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리버풀 수비진들이 잔뜩 라인을 끌어올린 후였다. 손흥민과 시소코에 맞서는 리버풀 수비수는 반다이크 혼자였다.
반다이크의 빠른 판단력이 빛났다. 반다이크의 선택은 시소코가 아닌 손흥민이였다. 손흥민을 등진 채 빠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시소코가 전달할 수 있는 패스 길목을 봉쇄했다. 시소코의 전진을 허용하되 손흥민에게 볼이 투입될 가능성을 차단한 셈이다.
결국 패스를 내줄 수 있는 각도를 좁히지 못한 시소코는 페널티박스 안까지 들어가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슛을 시도했다. 이 순간 반다이크는 빠르게 시소코에게 붙어 오른발 슛 각을 차단했다. 오른발잡이인 시소코가 익숙하지 않은 왼발로 슛을 처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도박과도 같은 상황에서 지켜야 할 패를 지키되 위험성이 가장 낮은 패를 내줬다.
반다이크의 판단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결국 시소코는 오른발이 아닌 왼발로 슛을 처리했고 흥분된 마음에 정확하게 차지 못했다. 볼은 골대를 한참 넘어 높게 솟구쳤다. 시소코는 머리를 감싸 쥐고 아쉬움을 온몸으로 토해냈다. 그리고 토트넘은 후반 45분 토비 알데르베이럴트의 자책골로 패했다. 반다이크와 시소코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적장 역시 반다이크의 활약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리버풀이 반다이크를 사는데 7000만 파운드(약 1032억원)를 투자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리버풀은 가까스런 승리로 한 경기 덜 치른 맨시티(승점 77)를 2점 차로 앞서며 선두에 올라섰다. 반면 토트넘은 6위 첼시(승점 60)에 1점 차로 허용하며 4위권 확보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반다이크의 결정적인 수비 하나가 이날 경기 승리의 향방을 넘어 프리미어리그 전체의 판도를 뒤흔든 셈이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