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챔스 결산, 무슨 일이 벌어졌나

입력 2019-04-02 12:00

2019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스플릿 정규리그가 지난 31일 막을 내렸다. 시즌 전부터 이야깃거리가 가득했기에 기대도 많았던 봄이다.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을 뒤엎는 결과들이 적잖게 나왔다. 정규리그 양상을 여러 관점에서 복기했다.

◆신흥강호의 약진과 폼 끌어올린 리빌딩 팀들

이번 봄은 챌린저스 코리아(2부 리그) 출신 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여름 처음 LCK 무대를 밟은 그리핀은 두 시즌만에 정규리그 1위를 꿰찼다. 1라운드에서 전승가도를 달리고 특정 선수의 KDA가 100을 넘어서는 등 폭발적인 경기력으로 ‘어나더 레벨’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2라운드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조기에 결승 직행을 확정하며 가장 강력한 포스트시즌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

올해 처음 LCK를 경험한 샌드박스와 담원도 각각 4, 5위에 오르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두 팀은 창의적이면서 과감한 플레이스타일로 승수를 차근히 쌓았다.

대대적인 리빌딩을 감행한 팀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폼이 올라왔다.


SK텔레콤 T1이 대표적인 예다.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발한 ‘드림팀’은 부담을 능히 이겨내고 2위 자리를 지켰다. 프리시즌 성향의 KeSPA컵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호흡이 맞고 개개인의 기량도 올라갔다. 2라운드 대 그리핀전은 백미로 꼽힌다.

킹존 역시 상체에서 호흡이 점점 맞아떨어지며 성적을 올렸다. ‘데프트’-‘투신’으로 이어지는 바텀 라인은 언제든 승리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구성이다. 문제는 상체에서의 호흡이었다. 상체가 강조되는 메타에서 킹존은 적응기를 겪으며 2연패로 시작했다. 이후 ‘라스칼’-‘커즈’-‘폰’으로 이어지는 상체가 빠른 속도로 합을 맞추며 괄목상대할만한 경기력 향상을 보였다.

킹존의 성공을 ‘변화’에서 찾는 시선이 상당하다. 잠깐의 유행으로 지나치는 듯 했던 ‘단식 메타’는 킹존에게 새 영감을 줬고, 그리핀이라는 대어를 낚는 결과를 창출했다. 아울러 ‘라스칼’ ‘폰’은 다양한 챔피언을 구사하며 전술의 폭을 넓혔다. ‘폰’은 이번 스플릿에서 무려 19개 챔피언을 다뤘다.

◆‘Worlds’ 출전팀의 몰락, 5개월 만에 무슨 일이?


지난해 가을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 올랐던 세 팀이 이번 스플릿에서 승강전 탈출 경쟁을 벌이는 괴이한 구도가 나왔다. 전통적인 강호로 꼽히는 팀들이 나란히 연패 수렁에 빠지며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직전 스플릿 우승팀인 kt 롤스터는 끝내 승강전에 떨어지는 수모를 맞았다. 스플릿 우승팀이 다음 스플릿 승강전을 치른 건 2015년 여름 승강전이 도입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스멥’ ‘스코어’ 등 우승 멤버에 최고의 미드라이너로 꼽히는 ‘비디디’가 가미되며 기대를 높였지만 바텀 라인에서 마침표를 찍지 못하며 결국 팀 밸런스가 무너졌다. 비원딜 메타로 답을 찾는 모습을 잠시나마 보였지만, 스플릿 내내 잦은 선수 교체 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며 결국 승강전을 치르게 됐다.

젠지, 아프리카 또한 스플릿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인’-‘유칼’로 탑, 미드를 채운 아프리는 한때 포스트시즌권 팀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탑을 제외한 라인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애매한 팀으로 전락했다. 스플릿 막바지에 바텀 경기력이 올라오며 간신히 승강전을 모면했다.

젠지는 메타에 적응하지 못했다. 바텀 중심의 전략을 짰지만 경직된 움직임으로 다른 팀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탑과 미드에서 잦은 선수 교체가 나왔고, 로스터상 탑 라이너인 ‘로치’가 미드로 기용되는 등 혼란스런 시간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승강전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스플릿이다.

◆더 중요해진 코칭스태프의 역할

감독과 코치의 역할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구단 관계자들은 전략 분석뿐 아니라 선수들의 멘탈 관리도 매우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리핀 김대호 감독은 승리보다 경기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기조로 선수들의 기량을 한껏 끌어올렸다. 구성원간의 믿음도 크다. 코칭스태프와 선수간의 신뢰가 실전에서 완벽한 경기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킹존의 경우 코칭스태프의 강한 동기부여와 선수 케어가 성적 반등의 기반이 된 것으로 보인다. 킹존 미드라이너 ‘폰’ 허원석은 “감사한 분들이 주변에 많다. 제가 세팅을 좀 오래 한다. 그래서 항상 30분 일찍 와서 미리 세팅하는데 매니저님, 코치님이 같이 와주셔서 도와주신다”고 했다. 그는 “최승민 코치님, 최천주 코치님, 강동훈 감독님, 매니저님들, 멘탈 코치님 등이 옆에서 잘 챙겨주셔서 여유롭게 플레이가 잘 나오는 것 같다. 팀원들도 제가 오랜 시간 쉬었는데도 믿고 함께해 주신다”면서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번 시즌 모래폭풍을 일으킨 샌드박스 역시 감독-코치의 치밀한 분석력이 근간이 됐다. 샌드박스는 스플릿 시작 전까지만 해도 유력한 강등권팀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선수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이번 시즌 가장 호흡이 잘 맞는 팀으로 거듭났다. ‘고스트’의 재발견이 특히 눈에 띈다.

담원 게이밍은 화려한 코칭스태프로 주목받았다. 선수 개개인의 피지컬은 그 어떤 팀보다 뛰어나지만 그만큼 조직력을 갖추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목경 감독을 중심으로 강태수 코치, 송창근 코치, 김정수 코치가 선수들을 부단히 케어하고 있다. 지난해 말 KeSPA컵에서 블라디미르를 깜짝 등장시킨 것은 아직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이 같은 깜짝 전략은 단기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선수들이 자신 있어 하는 챔피언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는 담원은 이번 포스트시즌 최고의 복병으로 꼽힌다. 멘탈 관리 또한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너구리’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송창근 코치께서는 ‘코치 그 자체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프로페셔널하시다. 피드백도 열정적이고, 선수들과도 대화를 많이 해서 정신적인 케어를 많이 해주신다”고 평가했다.

사진=라이엇 게임즈 제공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