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9일) KTX 화장실에서 탯줄이 그대로인 달린 채 사망한 신생아가 발견됐고, 오늘(30) 오전에는 아이를 낳은 뒤 유기해 숨지게 한 대학생이 자수했다. 이 대학생은 영아유기죄로 입건돼 2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것이다. 피임을 요구할 권리가 제대로 보장됐다면, 그리고 임신을 알았을 때 당사자가 온전히 결정할 권리가 보장됐다면 비극은 벌어지지 않을 것”
“영화 ‘캡틴 마블’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아무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어’.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다. 내 몸은 나의 것이다. 내 몸에 대한 결정을 하기 위해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을 것이다. 나 이외 아무도 나를 통제할 권리가 없다”
23개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개최한 낙태죄 폐지 촉구 시위에서 권혜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사서분과장이 한 말이다.
30일 오후 3시30분 공동행동은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거센 바람과 추위 속에서 우비를 입고 ‘낙태죄 위헌’ ‘낙태죄 폐지, 새로운 세계’ 등의 팻말을 들었다.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1항에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적혀 있다. 형법 270조 1항은 의사, 한의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 승낙 없을 땐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달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관련 헌법소원 선고를 앞두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 이날 공동행동은 “우리는 낙태죄를 폐지할 것”이라며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은 통제하고, 징벌하며, 건강과 삶을 위협해온 역사를 종결할 것이다. 국가가 인구를 줄이기 위해 강제 낙태와 불임시술을 강요하다가 다시 저출산 해소라는 명목으로 임신을 중지하는 여성을 비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기만적인 행태는 더 이용납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전면 비범죄화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확대 ▲유산유도제 도입을 통한 여성건강권 보장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낙인과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약물적 유산유도제를 도입도 요구하면서 “대학병원과 공공의료기관은 앞장서서 안전한 임신중지와 최선의 진료를 제고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라며 “국가는 최신 의료 기술에 대한 의료인 교육을 제도화하고 약물적 유산도입제를 도입해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약품처방과 시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외쳤다.
지난 1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재판소에 낙태한 여성을 형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건강권, 생명권, 재생산권 등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민주국가에서 임신을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낙태 역시 스스로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유엔(UN) 인권이사회(HRC) 산하 ‘여성 차별 철폐 실무그룹’도 헌재에 ‘임신 중지의 범죄화는 그 자체로 차별적’이란 의견서를 제출했다. 공동행동은 “실무그룹은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은 여성의 평등권과 존엄성, 자율성 등을 포함한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 권리를 위해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라며 “여성에게만 해당할 수 있는 행위의 범죄화는 그 차제로 차별적이며, 낙인을 유발하고 영속시킨다며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폐지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