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의 가능성이 커졌다.
영국 하원은 29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총리가 세 번째 표결을 시도한 EU 탈퇴협정을 찬성 286표, 반대 344표로 부결시켰다. 메이 총리는 EU 탈퇴협정과 미래관계 정치선언으로 이뤄진 합의안 가운데 EU 탈퇴협정만을 표결에 부쳤다. 같은 안건에 대해서는 투표를 또다시 진행할 수 없다는 존 버커우 하원의장의 허락을 받기 위한 메이 총리의 ‘쪼개기’ 시도였다.
영국과 EU는 지난해 11월 25일 총 585페이지에 달하는 EU 탈퇴협정과 26페이지 분량의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합의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EU 탈퇴협정에는 브렉시트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2020년 말까지 전환기간을 둔다는 내용을 비롯해 이혼분담금 정산, 양측 국민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거주 권리 보장, 안전장치(백스톱) 등이 담겼다.
메이 총리는 일단 EU 탈퇴협정을 통과시켜 브렉시트 시기를 미룬 뒤 추후 따로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표결에 붙이거나, 법 개정을 통해 비준을 생략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이번에 표결 통과시 총리직 사임이라는 배수진까지 쳤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이 영국 의회에서 두 차례나 거부당하자 EU는 지난 22일 탈퇴협정 가결을 전제로 브렉시트 시한을 5월 22일까지 연장해주기로 했다. 다만 부결시엔 4월 12일까지 노딜 브렉시트 또는 5월말 유럽의회 선거 참여 여부를 결정하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이날 하원에서 또다시 탈퇴협정이 부결되면서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졌다. EU 집행위원회는 탈퇴협정 부결 직후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명한 뒤 “노딜 브렉시트 시나리오는 이제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가 됐다. EU는 노딜 브렉시트 시나리오에 대비한 준비를 완벽히 마쳤다”면서 “영국은 노딜 브렉시트 시나리오에서 합의안에 보장된 그 어떤 혜택도 적용받지 못할 것이다. 질서 있는 브렉시트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영국 하원은 4월 1일 다시 한 번 의향투표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의향투표란 하원의 과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브렉시트 방안을 찾을 때까지 제안된 여러 옵션에 대해 투표하는 것이다. 앞서 지난 27일 처음으로 열린 의향투표에서 브렉시트 관련 8개 대안은 모두 과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대안 가운데 EU 관세동맹 잔류 대안이 찬성 264표, 반대 272표로 8표차 부결했으며 제2 국민투표 대안이 찬성 268표, 반대 295표로 과반에 가장 근접해 있다.
만약 추가 의향투표에서도 하원이 의견을 모으는 데 실패하면 영국은 4월 12일 노딜 브렉시트 시행 또는 5월 유럽의회 선거 참여를 전제로 한 브렉시트 장기 연기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4월 10일 임시 EU 정상회의를 열어 브렉시트 문제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