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발생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칭 문건 수사가 공전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는 문건을 두고 “한·미 동맹을 깨뜨리고 이간질하려는 반국가적 행태”라며 강력 대응을 밝혔지만 경찰 수사는 5달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11월 한 언론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보고서에 ‘한·미 공조에 이상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청와대는 해당 보고서가 내용과 형식에서 청와대 내부 문건이 아니라며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사칭 메일에 첨부된 문건이라고 반박했다. 한 연구원 명의로 외교전문가 다수에게 발송된 메일에는 ‘권희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의 강연 원고’라는 제목의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허위조작 정보가 생산 유포된 경위가 대단히 치밀한 데다 담고 있는 내용 또한 한·미 동맹을 깨뜨리고 이간질하려는 반국가적 행태”라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끝까지 파헤쳐서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밝히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민정수석실과 국가안보실 차원에서 사태의 실체를 밝히기는 어렵다고 판단, 박웅 사이버정보비서관 명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사 의뢰를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 지시했지만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사칭 문건)을 현재 수사 중”이라고만 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국제공조도 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찰 내부에서도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 통상 사이버수사는 서버 추적 등의 절차에 시간이 소요되지만 국민적 관심이 컸던 수사가 너무 진척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안보 전문가는 “수사 여건을 감안해도 너무 늦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에는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개인 이메일 계정이 도용돼 정부 부처에 “대북 정책과 관련된 내부 자료를 보내라”고 요구하는 가짜 메일이 발송됐다. 또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에는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가짜 메일이 국제교류재단 소장 명의로 유포되기도 했다. 특정 세력이 의도를 가지고 청와대 사칭 문건을 유포하거나, 국가 안보 정보를 빼내려 하고 있다는 의혹이 큰 상황이다. 여권 관계자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도 수사 속도가 너무 늦은 것 같다”며 “경찰은 수사를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못 하는 건지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