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진빌딩에서 29일 열린 한진칼 주총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측근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참석 주주 찬성 65.46%, 반대 34.54%로 가결됐다.
한진칼 2대 주주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10.8%)가 조 그룹 회장 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기업 가치를 올리겠다며 ‘조양호 측근’인 석 대표이사의 연임안에 대한 반대 의결권을 모았지만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KCGI는 “석 대표이사가 한진해운의 파산과 한진해운 지원으로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을 하락시켰다”면서 “사내이사 후보자로서 부적합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밖에도 재무제표 승인, 주인기 국제회계사연맹(IFAC) 회장·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주순식 법무법인 율촌 고문 등 사외이사 선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감사 보수 한도 승인 등 한진칼이 제안한 6개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이날 국민연금의 주주제안으로 상정된 ‘이사 자격 강화’ 정관 변경안이 찬성 48.66%, 반대 49.29%, 기권 2.04%로 부결되면서 조 회장의 실권 유지는 더욱 힘을 받게 됐다.
국민연금은 이번 주총을 통해 회사·자회사와 관련해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는 이사직을 즉시 상실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안건이 통과될 경우 270억원 규모의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 중인 조 회장은 재판 결과에 따라 이사 자격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관 변경안은 특별의결사항으로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통과된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직 상실에 따라 석 대표이사의 연임 여부에 관심이 쏠렸던 이날 주총 결과는 조 회장의 영향력이 막강함을 반증하는 모양새가 됐다.
지난해 말 기준 한진칼의 지분율은 조양호 회장 등 특수 관계인이 28.9%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표결은 지분율상 조 회장 일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게다가 3대 주주인 국민연금(7.3%)도 한진칼 이사회 측에 찬성표를 던졌다.
주식 지분 구성 면에서 봤을 땐 대한항공 경영권도 여전히 조 회장의 손아귀에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모기업 한진칼을 포함해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33.3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조 회장이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석 대표이사를 통해 그룹 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는 별 제약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는 KCGI가 주주제안 자격을 확보하는 내년 주총에서 조 회장 일가가 어떤 운명을 맞을지 벌써부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 회장의 한진칼 대표이사 임기도, 아들 조원태 사장의 등기임원 임기도 모두 내년 3월 만료되기 때문이다. ‘진짜 승부’는 내년에 겨뤄지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변화는 내년 3월 주총에서 정해지게 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KCGI와 국민연금이 어떤 의결권을 행사할지 알 수 없는 데다 조 회장 일가를 견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결과를 장담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