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제천참사 피해자 4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 생각했다

입력 2019-03-29 15:08
뉴시스

경북 포항 지진과 충북 제천 화재 참사의 피해자 4명 중 1명(약 10%~30%)은 극단적 선택을 고려했고, 일부는 시도까지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국내 중대재난 피해지원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특조위에 따르면,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5.4 규모의 지진 피해자와 같은 해 12월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피해자 중 20~30%는 극단적 선택을 고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피해자도 있었다.

국가미래발전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0월 15일~12월 20일 동안 포항지진 피해자 40명과 제천화재 피해자 30명을 대상으로 경제·신체적 변화와 심리적 피해와 구호 지원에 관해 설문·심층 조사를 실시했다.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발생한 국가적 중대 재난 가운데,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벌어진 두 사회적 참사를 분석하면서 재난 대응 과정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분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포항지진 피해자 82.5%는 피해 이후 이전에는 없던 불안 증세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불면증과 우울 증상을 보이는 이들은 각각 55%와 42.5%로 집계됐다. 절반에 가까운 47.5%가 수면제를 복용했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봤다는 응답은 16.1%, 실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봤다는 응답은 10%로 나타났다.

제천화재 피해자의 경우 사고 후 73%가 전에 없던 불면증을 앓았다. 76.7%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느낄 정도로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우울감(53.3%)과 불안감(50%)도 호소했다. 정신 이상 증세로 피해자 31%가 수면제를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고, 극단적 생각과 극단적 선택 시도에 관한 응답률은 각각 36.7%, 6.7%였다.

정신적 피해는 물론, 신체적으로도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포항지진 피해자의 경우 ‘나빠졌다’는 응답은 42.5%, ‘매우 나빠졌다’는 응답은 37.5%로 나타났다. 제천화재 피해자의 경우 각각 43.3%와 13.3%로 확인됐다. 두 그룹 모두 ‘좋아졌다’ ‘매우 좋아졌다’는 응답은 없었다. 포항지진 피해자의 67.5%, 제천화재 피해자의 83.3%가 사태 이후 새로운 질환을 얻기도 했다. 소화기계(위염·위궤양·소화불량), 신경계(만성두통) 등 10여종에 이른다.

생활 기반이 무너지면서 가계상황도 나빠졌다. 가구 총자산의 경우 포항지진 피해자는 34.1%, 제천화재 피해자는 39.2%가 줄었고, 가구 지출액은 포항지진 피해자 28.1%, 제천화재 피해자 37.9%가 늘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포항지진 피해자는 생활안정지원(54.3%), 조세·보험료·통신비지원(42.5%), 일상생활지원(41.7%) 순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천화재 피해자는 구호 및 복구 정보 제공(33.3%), 생활안정지원(24.1%), 일상생활지원(24.1%) 순으로 답했다.

특히 포항지진 피해자는 국가의 진상 조사 노력에 대해 80.5%가 부정적 의견을 냈다. 박희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포항지진 피해자들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정부에서 제대로 지원을 못 받는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제천화재 피해자의 경우, 지진 피해가 지역 전체에 미쳐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는 포항 시민과는 달리 심각한 사회적 관계망 훼손을 호소했다. 특히 소방본부와의 갈등 때문에 소방에 대한 일반인들의 우호적 정서와 상충돼 사회적 거리감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특조위는 ▲독립적 재난 원인 및 대응과정 조사단의 상설기구화 ▲피해지원 재정 확충을 위한 (가칭)국민재난복구기금 신설 ▲재난지원의 공정성과 형평성 확보 ▲의료 및 심리지원의 한시성 문제 개선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우선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