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학습효과?…아시아나 박삼구, 주총 하루 전 사퇴한 이유는

입력 2019-03-29 00:37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4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광화문사옥에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주주총회를 하루 앞두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대표 국적기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운영하던 항공재벌 총수들이 하루를 차이로 같은 운명을 걷게 된 셈이다.

조양호 회장과 박삼구 회장. 두 사람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점은 같지만 퇴진 이유는 달랐다. 28일 금호아시아나에 따르면 박 회장은 전날(27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금융시장 조기 신뢰 회복을 위해 KDB산업은행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어 박 회장은 2018년 감사보고서로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룹 회장직 및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등 2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불거진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사태 등에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회장이 이동걸 회장을 만났던 날 조 회장은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연임에 실패했다. 그의 이사 연임을 반대하는 데 35.9%의 표가 몰렸고 재선임안은 부결됐다. 주총 결과에 따라 조 회장은 대한항공 이사회 멤버로 참여할 수 없게 됐고, 조 회장·아들인 조원태 사장·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사장의 3인 대표체제는 조 사장과 우 부사장의 2인 대표체제로 바뀌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에 무슨 일이

박 회장이 퇴진 의사를 밝힌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 사태다.
아시아나항공의 문제는 지난 25일 아시아나항공의 회계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이 ‘한정’ 의견을 담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한정 의견이란 회사가 제대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을 때 나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부실한 재무 구조가 공개됐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실적은 당초 목표한 것과 달리 부진했다. 지난해(별도 기준) 영업이익의 목표는 3800억원이었지만 실제 받아든 성적표는 3분의 1수준인 1289억원에 그쳤다. 또 2545억원을 목표로 했던 당기손익은 125억원의 손해를 보면서 적자 전환했다.

이처럼 재무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내면서 아시아나항공은 개선작업에 ‘올인’했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연간매출 60% 정도를 책임지는 핵심 계열사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건전성이 그룹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만큼 박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재무구조 개선에 총력을 기울인 건 당연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28일 전격 퇴진을 발표하며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다. 사진은 이날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모습. 최현규기자

지난해 그룹 사옥과 CJ 대한통운 주식 매각,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 상장을 통해 별도 기준으로 부채를 700.5%까지 낮췄다. 그룹 전체 부채는 364.3%로 전년보다 약 30%포인트 개선했다.

문제는 이 같은 노력에도 유동성 위기는 더 커질 것이라는 시장 전망이 나왔다는 점이다. 올해부터 새 회계기준(IFRS-16)에 따라 운용리스 비용은 부채에 포함된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보유 항공기 82대 중 50대를 운용리스로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항공기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 회계기준에 따르자면 부채에 해당한다. 차입금 규모도 지난해 기준 3조 9521억원에 달한다.

우여곡절 끝에 감사의견 ‘적정’을 받긴 했지만 적자 폭이 2000억원에 이르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신용등급이 하락하게 되면 지난해 말 기준 1조 1328억원에 달하는 자산담보부증권(ABS)을 즉시 상환해야 한다.

뜨거운 불 꺼지면 조용히 복귀 가능

위기에 직면한 박 회장은 결국 회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전날 조 회장이 주주들의 힘으로 경영 일선에서 쫓겨난 ‘총수 1호’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는 점이 이런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주총에서 주주들이 박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일종의 ‘학습효과’였다.지난해 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 중단 사태로 위기관리 능력에 허점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같은 날 열리는 금호산업 주주총회에는 박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이 올라와 있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는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져 있다. 박 회장이 보유한 주식은 31.1%다. 재선임 안건에 대한 표 대결이 펼쳐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재선임 안건에 반대를 권고했다.

‘형제의 난’을 일으켜 갈등의 골이 깊은 금호석유화학의 박찬구 회장이 11.98%의 주식으로 아시아나항공 2대 주주에 올라있다는 점도 박 회장에게는 부담이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차기 회장에 대해 “빠른 시일 내 명망 있는 외부 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영입할 계획”이라며 “박 회장이 대주주로서 그동안 야기됐던 혼란에 대해 평소의 지론과 같이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차원에서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박 회장이 완전히 퇴진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3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전력을 비춰 봤을 때 언젠가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여기에 대한항공 조 사장과 달리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3세 경영’을 펼치기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일단 어려운 상황은 피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 재벌개혁본부 권오인 국장은 “부담감이 컸을 것이고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높다”면서 “다만 과거 금호타이어 사태처럼 박 회장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급한 불 끄듯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