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의 3월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데이는 완벽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남미의 강호 볼리비아와 콜롬비아를 모두 꺾었다. 특히 콜롬비아(12위)는 한국(38위)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26계단 위에 있는 난적이다. 이들을 상대로 그간 고정돼왔던 전술에 변화를 주며 1점 차 승리를 챙겼다.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실패를 뒤로 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달 A매치에서 나타났던 변화점은 특히 눈여겨볼 만 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두 경기 모두 같은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시도해 보지 않았던 투톱을 내세우며 4-1-3-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그간 전술 변화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진취적인 변화였다. 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처럼 손흥민을 최전방에 위치시켰다.
연계에 강점이 있는 지동원과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움직임이 좋은 황의조를 번갈아 파트너로 기용했다. 손흥민은 적극적으로 직접 슛을 시도했고, 26일 콜롬비아전에서 A매치 9경기 만이자 벤투호에서 처음으로 득점포를 쏘아 올렸다. 그러나 승리 뒷면에 약점도 노출됐다. 벤투호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불안했던 정우영, 흔들린 대형
원 볼란치로 기용된 정우영의 활약은 아쉬웠다. 그의 부진 속에는 개인 기량 이전에 전술적인 이유도 있었다. 벤투 감독은 후방 패스보다는 끊임없이 전진할 것을 요구한다. 콜롬비아전에서 선발로 나선 우측 풀백 김문환이 앞에 있는 황인범을 보지 못하고 조현우에게 백패스를 했다 혼쭐이 났을 정도다. 앞선 미드필더에 위치한 황인범과 이재성 모두 공격 성향이 짙은 선수들이다.
좌우 윙백들에게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공격 상황에서 과감히 오버래핑할 것을 지시했다. 자연스레 수비적인 리스크는 정우영의 몫이었다. 기존 4-3-2-1 포메이션에서 세 명이 뛰던 자리가 혼자가 되니 커버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우영이 후반 들어 유독 체력적으로 지쳤던 이유다. 공격 재능과 활동량을 갖춘 3명의 미드필더를 전진시키며 전방위적인 압박을 구사하는 4-1-3-2 원 볼란치 시스템에서 수비적인 뒷감당을 버텨내 줄 ‘1’라인의 역할은 막중하다.
콜롬비아와의 후반전에서 정우영의 약점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된 하메스 로드리게스는 체력적 이점을 바탕으로 펄펄 날았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콜롬비아 감독의 전술적 판단도 적중했다. 후방에 무게중심을 뒀던 전반전과 달리 후반전에는 부쩍 라인을 높게 끌어올렸다. 하메스가 정우영을 비롯한 한국 미드필더진과의 허리 싸움에서 완전히 우위를 점하며 중원을 장악했다. 정우영의 몸이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정우영의 부진은 악재가 돼 나비효과처럼 돌아왔다. 중원 장악력을 잃다 보니 상대 측면 공격수들인 루이스 디아즈와 루이스 무리엘이 훨씬 적극적으로 전진했다. 이들이 중원에 가담해 수비적으로 압박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양측 풀백으로 나선 홍철과 김문환의 움직임은 제한됐다. 뒷선에서 볼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최전방에 선 손흥민과 황의조는 공격적인 옵션이 될 수 없었다. 손흥민은 볼을 받기 위해 하프라인 근처까지 내려왔다. 정우영의 부진이 낳은 연쇄적인 결과였다. 후반 12분 터진 이재성의 날카로운 중거리 슛과 조현우의 선방이 없었다면 승부의 결과가 뒤바뀌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였다.
벤투 감독의 교체 카드 기용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도 여기에 있다. 벤투 감독은 이날 총 3장의 교체 카드를 사용했다. 4장의 교체 카드를 사용한 콜롬비아보다 한 장 적었다. 3명의 교체만 가능한 정규 국제경기하고는 달리 친선경기로 진행되는 평가전의 경우 교체카드를 총 6장까지 사용할 수 있다. 3장을 아낀 셈이다.
3장의 교체카드를 살펴보면 2장이 2선 측면 공격수들의 교체였다. 기존에 이어가던 공격적인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며 패스 흐름을 뺏긴 상황에서 패스 조직을 개선하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후반 14분 이재성을 제외하고 권창훈을 투입했고, 후반 23분 이청용을 빼고 나상호를 투입했다. 2-1로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다. 22일 볼리비아전과 같은 측면 공격수 라인업이다. 벤투 감독 공격 옵션에서 권창훈-나상호와 이청용-이재성이 서로의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은 한 장은 후반 37분 최전방에 움직임이 제한돼있던 황의조를 제외하고 권경원을 투입했다.
벤치에 있던 주세종의 존재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우영의 고갈된 체력이 더욱 돋보였던 이유도 그러한 아쉬움 때문이다. 중원 장악력을 되찾아 오고자 했다면 더 편안한 미드필더 플레이가 가능하며 수비적인 안정감도 갖춘 주세종도 있었다. 주세종이 22일 볼리비아전에서 안정된 수비력을 보였던지라 아쉬움은 더 진하게 남았다. 2-1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권경원을 투입해 파이브백으로 전환하며 모험 대신 안정과 실리를 택할 요량이라면 지친 정우영의 교체도 유효한 선택지였다.
정우영은 콜롬비아전이 끝난 후 “평소와 다른 포지션이라 역할이 달랐다”며 쉽지 않은 경기를 했음을 시인했다.
눈여겨볼 4-1-3-2
벤투 감독은 후방부터 짧은 패스로 시작되는 빌드업 과정을 중요시한다. 공을 탈취한다 하더라도 측면으로부터 속공 상황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 지향적으로 천천히 위로 올라간다. 벤투식 축구에서 중원은 심장과도 같다. 중원 장악력을 잃게 되면 공격적인 흐름 전체에 마비가 생긴다. 지난 아시안컵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상대의 좁은 밀집 수비에 중앙으로 볼 투입이 되지 않다 보니 양 측면 풀백들의 크로스로 공격루트가 집중됐다.
이번 27명의 선발 자원 중 2선 미드필더 라인 선수들을 유독 많이 불러들였던 것도 추후 전술적 구상을 끝내놓기 위함일 것으로 풀이된다. 손흥민, 황희찬, 권창훈, 이청용, 나상호 등 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격적인 자원들을 2선으로 분류한 것도, 이강인과 백승호 같은 스페인 무대에서 활약하는 신예들을 예상보다 일찌감치 불러들였던 이유도 그래서다. 손흥민의 전진배치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조합을 짜보겠다는 계산이다.
벤투 감독의 이러한 의지는 A매치 라인업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이강인, 백승호, 김정민 등 어린 선수들을 제외한 모든 미드필더가 실전에 투입됐다. 주세종과 정우영이 각각 한 경기씩 전담했고, 2선 측면 미드필더들의 선발진을 바꾸면서까지 실험에 나섰다. 볼리비아전과 비교했을 때 콜롬비아전에서는 절반이 넘는 6명의 선수가 선발 명단에서 교체됐다. 애초에 벤투 감독이 구상했던 실험 목적의 대상이 선수가 아닌 전술이었다는 얘기다. 생애 첫 성인대표팀에 승선한 이강인, 백승호, 김정민이 기회를 받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4-1-3-2 포메이션의 가장 큰 장점은 경직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움직임이 비교적 제한되는 기존의 4-3-2-1과 차이가 있다. 선수들은 경기 내내 스위칭 플레이를 하며 자신의 공간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고립되는 문제도 덜어낼 수 있다.
후방 빌드업 속도를 위해 2선 미드필더들을 하프라인 윗선까지 라인을 끌어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수비적인 리스크는 커진다. 그래서 비교적 제한된 움직임을 가져가며 지역방어에 치중하는 선수는 중앙 수비수 한 명과 앞선에 선 수비형 미드필더 정도다. 주세종과 정우영이 위치했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역린’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상대 감독으로서는 이 부분만 제대로 찌르면 쉽게 경기를 장악할 수 있다. 그리고 정우영은 실제로 경기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하메스에게 여러 번 슛을 허용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아직 대형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못했다.
벤투 감독의 이달 A매치 성적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훌륭하게 치렀다. 안정된 운영을 시도하려는 기존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지난 아시안컵 때 고전했던 전형에서 한 단계 진화했다. 특별한 선수의 깜짝 등장과 급진적 변화는 없었지만 개선점을 찾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덤으로 승리까지 챙겼다. 벤투 감독의 경기 접근법과 방향성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시안컵 실패가 어느 정도 자양분으로 축적됐다.
남은 것은 세부적인 전술 완성도에 집중하는 일이다. 보수적이고 변화에 두려워한다는 일각의 편견도 있지만 벤투 감독은 침착하게 팀을 이끌고 있다. 벤투 감독 스스로 수차례 강조했던 정체성과 토대를 갖춘 상태에서 나름대로 개선점을 찾고 있다. 매우 유의미한 변화다. 이달 A매치는 새로운 변화와 더불어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