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진행형 vs 과거형…조양호·최태원 회장 운명 가른 것은

입력 2019-03-28 00:09
국민일보 DB

국민연금은 대한항공과 SK㈜의 그룹 총수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주주총회가 열리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이유는 같았다. ‘총수가 기업가치를 훼손한 이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SK·대한항공 주총, 기업가치 훼손 ‘현재진행’이냐 ‘과거형’이냐에서 갈렸다


27일 한 시간의 시차를 두고 대한항공과 SK㈜의 주총이 열렸다. 1시간 앞서 열린 대한항공 주총에서는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표가 35.9% 나왔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르면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연임에 동의해야 하는데 조 회장의 연임에 찬성한 표는 64.1%에 그쳤다. 66.66%를 받아야 연임이 가능했다. 총수가 주주들에 의해 사내이사 지위를 잃은 국내 첫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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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회장이 재선임에 실패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은 SK로 쏠렸다. 대한항공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대로 적용되면서 SK㈜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SK㈜ 주총에서는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최 회장은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다.

국민연금이 똑같이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먼저 대한항공과 SK㈜에서 국민연금은 똑같이 2대 주주이지만 갖고 있는 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국민연금의 대한항공 지분은 11.56%였다. 그러나 SK㈜ 지분은 8.37%에 불과했다. 시장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최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봤다.


여기에 국민연금에서 제시한 ‘총수가 기업가치를 훼손한 이력’의 시점도 한몫했다. 조 회장과 최 회장의 우호지분이 30%대로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외국 자본과 소액 주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설득의 포인트는 총수의 기업 훼손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느냐였다.

대한항공의 경우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부정적 여론이 큰 상황에서 조 회장의 횡령 배임 의혹까지 불거졌다. 조 회장은 납품업체들로부터 부품과 면세품을 구입하며 부당한 중개수수료를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에 반해 최 회장은 2014년 분식회계와 횡령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구속됐다. 국민연금이 기업가치를 훼손했다고 본 부분이다. 하지만 이날 주총에서는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총회에 참석한 80여명의 주주가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의장을 맡은 장동현 SK㈜ 사장이 최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 의안을 내밀자 모두 이의 없이 “동의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주총은 시작한 지 30분만에 끝났다.

주주의 생각이 엇갈린 결정적 이유는 최 회장의 기업가치 훼손은 형이 확정된 과거형이고 조 회장은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항공은 오너 일가의 갑질 문제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주주들에게 심정적 동의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한항공 주가는 조 회장이 연임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주식시장에서 상승했다. 전일대비 2.47%오른 3만3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반대로 SK㈜ 주식은 최 회장이 이사회 자격을 이어가게 됐다는 소식이 나온 직후 주가가 27만1000원까지 치솟았고 26만7500원에 거래를 끝냈다.

이날 대한항공과 SK㈜ 주총 결과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는 데 중심을 잡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주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동일하게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공격을 막겠다며 현대차의 사외이사 선임 등 5개 안건에 대해 모두 찬성했다. 그러나 이날 대한항공과 SK㈜에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경실련 재벌개혁본부 권오인 국장은 “국민연금은 주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며 “오히려 국민연금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주들은 자신의 이익 실현을 위해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국민연금은 중심을 갖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