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눈도 안 마주친 MB와 이학수…“당선 유력해 소송비 지원”

입력 2019-03-27 18:01


이학수(73)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이명박(78)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처음으로 법정에서 대면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뇌물’ 혐의 관련 진위를 가릴 핵심 인물로 꼽힌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27일 열린 이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 항소심 15차 공판기일에 출석한 이 전 부회장은 다스가 BBK에 투자한 돈을 돌려받기 위해 미국에서 진행하던 소송 비용을 삼성에서 내준 경위를 설명했다.

앞서 그는 검찰 조사에서 삼성이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을 지원했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제출해 이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 입증에 큰 역할을 했다. 검찰은 지난해 4월 이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하면서 다스 미국 소송비용과 퇴임 후 자금 등 67억70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적용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이날 재판에서 “다스의 미국 소송을 맡은 로펌 에이킨 검프의 김석한 변호사가 2007년 이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찾아왔다”며 “이 전 대통령 캠프에서 은모 변호사와 일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맡은 법률 조력 업무에 비용이 들어가니 삼성에서 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후보 측에서 요청한 것이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 회장은 김 변호사가 이런 요청을 했다고 하니 ‘요청하면 그때 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사실을 고려했다고도 했다.

이 전 부회장은 또 “대통령 후보나 대통령 되시고 나서 청와대에서 그런 요청이 들어오면 거절하기 어려운 게 있다”며 “요청에 응하면 여러 가지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금 지원이 이건희 회장의 특별사면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느냐”는 검찰 질문에는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이날 법정에서 처음 대면한 이 전 부회장과 이 전 대통령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 전 부회장은 증인신문을 하기 전 재판부가 “피고인과 대면하기 어려우면 가림막도 설치할 수 있다”며 의견을 묻자 “그냥 괜찮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가 이날 전격 출석했다. 이날 재판에서도 불출석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난 6일 재판부가 구인장을 발부하겠다고 밝히면서 소환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