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수!’
현행 법리를 교묘히 파고든 변호사들의 예상치 못한 한판 승리였다.
위헌법률심판 신청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해당 재판 절차가 중지된다는 현행 법 체계가 안겨준 뜻밖의 선물이기도 했다.
김삼호 광주 광산구청장이 신청한 공직선거법 위헌법률심판에 관한 판결이 내려진 27일 광주고법 법정.
당사자인 김삼호 광주 광산구청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쾌재를 불렀다.
간절히 바라던 재판 결과가 내려지자 김 구청장은 땀에 젖은 양손을 남몰래 움켜쥐었다.
재판부(형사 1부 부장판사 김태호)가 김 구청장이 낸 공직선거법 위헌법률심판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될 경우 법원이 직권 또는 당사자 신청에 따라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하는 제도다.
재판부에 의해 심판 제청이 이뤄지면 해당 재판절차는 무조건 헌재 결정 이후로 연기된다.
헌재가 위헌법률 여부를 가리기 위해 통상 수년간 재판을 진행하는 점으로 미뤄 볼 때 그동안 백척간두에 섰던 김 구청장은 사실상 3년여 남은 임기를 대부분 채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재판부는 이날 “현행 공직선거법이 공기업 근로자의 정치 운동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김 구청장의 손을 들어줬다.
초선인 김 청장은 6·13지방선거를 1년여 앞둔 2017년 7∼9월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대비해 시설공단 직원 등 4100여명을 당원으로 불법 모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이들을 간접적으로 선거판에 끌어들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김 청장의 앞날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임기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광주 민선단체장 가운데 가장 먼저 사퇴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철도공사 상근직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현행 공직선거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올해 1월 위헌법률심판 신청을 했고 광주고법 판결에 따라 기사회생한 것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철도공사 관련 재판에서 “직급에 따른 업무의 내용과 수행하는 구체적인 직무 성격에 대한 검토 없이 일률적으로 모든 상근직원에게 선거운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것은 선거운동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광주고법 측은 판결 직후 “위헌제청 결정서를 송부하면 헌재는 이를 접수해 심판절차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현행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돼야만 당선 무효가 된다.
다시 말해 김 구청장은 형 확정 이전까지 선거법위반 유·무죄를 다투는 재판과 상관없이 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앞서 김 구청장이 선거 출마를 미리 계획하고 더불어민주당 경선을 위해 당원을 모집한 게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 아닌 불법 경선·사전선거 운동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았지만 헌재 결정 이후에나 항소심 재판을 받게 된 김 구청장은 현재 임기가 3년여 남아 있다.
광주 법조계 인사는 “김 구청장이 운좋게 유능한 변호사를 만난 게 아닌가 싶다”며 “신의 한수가 김 구청장의 운명을 갈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