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예방을 주제로한 공익광고에 대해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는 “전혀 공익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대안없이 ‘행동통제’에만 초점을 맞춰 경각심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불안함만 자극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 보니, 성별화된 범죄인 데이트폭력 광고에서 성별성을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공익광고협의회는 지난 11일 ‘데이트 폭력 예방 - 사랑하는 척 편’을 공개했다. 광고에는 남성과 여성 각각 두 명씩 동일하게 등장한 뒤 ‘걱정인 척, 관심인 척, 아끼는 척, 소중한 척, 사랑하는 척 하지마세요’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어 ‘데이트 폭력, 강요와 통제에서 시작됩니다’라고 쓰인 화면이 나온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여성활동가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광고영상을 공유한 뒤 “데이트폭력은 성별화된 범죄다.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강압적 통제가 친밀한 폭력의 본질”이라며 “데이트폭력의 성별성을 삭제하고 대체 뭘 예방하고 뭘 없애자는 겁니까 지금. 이 광고 만들면서 성별영향분석평가 받기는 한겁니까”라고 지적했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연구소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녀를 모두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광고가 행동통제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공익광고의 경우 관심과 폭력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했다. 행동통제 자체는 남녀 모두 범하고 있는데, 이를 범죄로 볼 수는 없다”며 “오히려 논란의 여지를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데이트폭력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전달이나 대처하는 방법 등을 전혀 담지 않았다. ‘어떻게’라는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공익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며 “데이트폭력이라는 섬세한 주제를 다루면서 대안 없이 행동통제에만 집중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번 광고는 데이트폭력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행동통제는 남녀 모두 조심해야하지만 이로 인해 벌어지는 신체적 폭력의 피해자 90%이상은 여성”이라며 “데이트폭력이 행동통제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추후 심각성에 이르기까지는 남성의 가스라이팅과 신체적 폭력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광고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불안함, 두려움에 대한 경각심을 무시했다”며 “금연광고처럼 자극적으로 표현해 공포심만 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김 소장은 “차라리 실태를 그대로 노출해 피해자의 심리나 폭력의 정도를 보여주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회적 논란의 민감성만 높은, 공감대는 낮은 홍보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거의 여성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물리적인 힘의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안전이별’이라는 신조어마저 생겼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신고가 접수된 사건 중 83.2%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자행되는 폭력이었다. 성폭력 피해가 685건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가정폭력 644건, 데이트폭력이 255건, 스토킹이 214건을 차지했다. 거의 모든 사건(94.3%)에서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가해자 절반 이상(57.5%)은 배우자, 애인, 데이트 상대자였다.
올해 12월 25일 시행되는 미투 1호 법안인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도 데이트폭력이 포함됐는데, 여성이 이같은 범죄에 더 빈번하게 노출되는 현실을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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