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 스페인 고산의 ‘한국댁’ 김산들씨

입력 2019-03-26 16:31
김산들(맨 왼쪽)씨 가족. 김씨 가족은 고산 마을의 낡은 집을 7년 동안 수리해서 살고 있다. 본인 제공


스페인에 사는 ‘한국댁’ 김산들(44)씨는 아마 발렌시아 CF 소속으로 뛰고 있는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강인(18) 다음으로 유명한 스페인 거주 한국인일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스페인 남편과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서 세 딸을 키우며 사는 모습이 2017년 ‘인간극장’(KBS)을 통해 소개되면서 꽤 알려진 번역자로 활동하고 있다.

책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표지. 시공사 제공

신간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시공사)를 낸 김씨는 26일 국민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내가 사는 곳은 평야가 넓어서 밀밭과 보리밭이 많다. 스페인은 대체로 기후가 온화하고 하늘이 푸르다”며 “요즘 우리 아이들은 자전거를 끌고 밀밭으로 산책을 자주 나간다. 양 떼를 구경하고 양치기 아저씨에게 민담을 듣고 한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림 같은 장면이다.

김산들씨. 시공사 제공


올해 결혼 16년차인 김씨 부부에게는 산드라, 쌍둥이 누리아와 사라가 있다. 그는 “도시의 문명과 이기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식물과 동물의 생태를 가까이에서 보는 그 공생적 삶이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다른 생명에 대한 배려와 환경의 소중함을 배운다.

김산들씨의 세 딸들. 시공사 제공

김씨는 “아이들이 숲에서 버섯을 맛있게 먹는 쥐를 목격한 적이 했는데 숲이 인간의 소유가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은연중에 느끼더라”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도 매우 꺼린다. 어른의 말만 듣는 아이가 아니라 자연에서 스스로 배우고 체험하고 체득해가는 모습에 감동하곤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그는 “며칠 전 아이가 놀이터에서 팔을 심하게 다쳤다. 응급치료를 위해 도시로 가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안타깝다”고 했다. 김씨는 책에서도 “시골이라면 낭만이나 휴식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지만 실제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인내”라고 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스페인 문화를 볼 때 가장 부러운 것은 무엇일까. 김씨는 “교육에서는 높은 성적보다 사회 구성원으로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가르친다. 학교에서는 그룹 과제가 많고 프로젝트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다. 또 한국에선 ‘혼밥’이 유행이라는데 여기서는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것을 중시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수다의 왕’이라고 하는데 소통을 매우 잘 한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경험을 얘기했다. “가족 간 대화로 스트레스도 풀고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면 좋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숨기는 경우가 참 많다. 나도 20대 때 삶의 출구가 보이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한국 부모님이 내개 준 조언은 단 하나 ‘빨리 돈 벌어서 결혼해라’였다”고 아쉬워했다.

김산들씨와 남편의 젊은 시절. 시공사 제공

그는 부모에게 새 직장을 위해 해외 연수를 떠난다고 속이고 여행에 나섰다. 이 여행의 여정에서 현재의 남편 후안호 투르 라이게라씨를 만났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김씨는 남편에게 체코 프라하 한 카페에서 엽서를 썼다. ‘나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알려준 친구. 나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우정은 오래 간직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 엽서를 깜빡 잊고 카페에 그대로 두고 나왔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만난 남편이 프러포즈를 한 뒤 이 엽서 때문에 결혼을 고민하고 결심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부분은 미스터리다. 김씨는 “아마 카페에 놓인 그 엽서 내용은 본 누군가가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해 일부러 부쳐준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엽서를 매개로 기적적으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김산들씨와 남편의 근래 모습. 시공사 제공

한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에 인구가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시골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씨는 “시골에도 도시처럼 다양한 일자리가 있다면 얼마든지 사람들이 시골에 가려고 할 것이다. 막연한 경제 지원보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이 시골에서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도 깨끗한 자연을 친구 삼아 교육받게 되니 얼마나 좋냐”고 했다.

스페인어를 공부한 김씨는 번역을 하거나 글을 기고한다. 산림학을 공부한 남편은 공원에서 자연 해설사로 일한다. 김씨 부부가 평생 이곳에 살기를 결심한 건 아니다. 그는 “비스타베야는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가는 한 정거장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변화가 오면 그 변화에 맞춰 능동적으로 살 것”이라고 한다. 능동적으로 인생의 주요 선택을 한 그의 삶은 늘 열려있는 듯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