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전 장관 영장 기각…靑 겨눈 검찰 수사 제동

입력 2019-03-26 02:10 수정 2019-03-26 02:12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사전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번 사건이 ‘정당한 인사권’ ‘장관의 감찰권’의 일환이라는 청와대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25일 김 전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여권이 총공세를 펼친 영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인사에 대한 직접 수사의 발판이 될 김 전 장관 혐의 입증에 실패하면서 청와대를 겨눈 검찰의 수사는 동력을 잃게 됐다.

박정길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6시간30분에 걸친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26일 새벽 검찰의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신병을 확보 후 인사수석실을 중심으로 청와대 관계자들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교체에 부당하게 관여했는지를 본격 조사할 방침이었으나 이 역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 적시한 김 전 장관의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업무방해다. 지난해 2월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임기가 남았음에도 일괄 사표 제출을 강요하고 ‘표적 감사’를 벌인 의혹은 직권남용,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후임자 공모 과정에서 일부 지원자에게 면접 자료를 선별 제공하는 등 특혜성 채용을 했다는 의혹은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이 같은 구조가 박근혜정부의 ‘문체부 블랙리스트’와 유사한 형태인 것으로 봤다.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사건에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 전 장관의 혐의에는 청와대 인사들도 여럿 등장한다. 검찰은 이미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를 담당했던 전현직 균형인사비서관실 행정관 등을 소환해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관여한 정황을 파악하고 소환 일정을 조율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안팎에선 이번 수사가 조현옥 인사수석까지 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었다. 김 전 장관 역시 취임 초 “(저에게는) 인사권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었다.

법조계에서는 당청이 최근 정당한 인사·감찰권 행사였다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내는 것이 법원의 기각 결정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직권남용은 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워낙 넓다”고 말했다. 또다른 변호사는 “감사가 장관의 권한인 만큼 ‘표적 감사’ 과정에서 직권남용한 부분을 명확히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권이 이번 수사를 놓고 압박성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사법심사 대상인 사람에 대해 청와대가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건 매우 부적절하다”며 “검찰이나 법원 모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은 안대용 박세원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