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왜 김신혜 재심 결정하고도 형집행정지 안할까

입력 2019-03-26 00:20
뉴시스

친부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9년째 수감 중인 김신혜(42)씨의 재심 여정이 진행 중이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은 사법 사상 처음이다. 한 시민단체는 재판부에 김씨의 형집행정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김씨의 두번째 공판준비기일이 25일 오후 2시 광주지법 해남지원 1호 법정에서 형사합의 1부(지원장 김재근) 심리로 열렸다. 이날은 정식 재판에 앞서 주요 쟁점과 입증 계획 등을 정리하는 절차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첫번째 공판준비기일은 지난 6일이었다.

재판에 앞서 김씨 측 김학자 변호사는 “김씨가 향후 절차를 듣고 매우 힘들어했다”며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경찰과 검찰, 법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20여년이 사라진 것에 대한 억울함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날은 검찰 측에서 제출한 추가 증거와 첫번째 공판기일에서 다루지 못했던 공소사실 쟁점 등에 대한 심리가 진행됐다. 검찰 측과 김씨 측은 19년 전 수사 과정에서 수집된 증거 채택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날 공판기일은 이례적으로 휴정까지 해가며 2시간 넘게 진행됐다.

김씨 측은 부당한 수사로 수집된 증거를 재판에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당시 경찰은 2인 1조 압수수색 규정을 어긴 채 영장도 없이 김씨 집을 찾아가 허위로 수사기록을 작성했다. 또 김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 없이 범행을 재연하게 했다.

아울러 수사기관이 “김씨가 수면제를 갈아서 아버지에게 먹였다”고 했다가 알약을 간 그릇과 근처에 있던 행주에서 약물 성분이 검출되지 않자 “알약 30알을 먹였다”고 기록을 고친 정황이 발견됐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 과정에 일부 잘못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김씨의 무죄를 증명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진술서를 작성할 당시 경찰이 강요했다는 증거 역시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법원이 김씨의 형집행정지를 불허한 이유였다. 앞서 재판부는 “경찰관 직권 남용 등의 이유로 재심 개시 결정을 하기는 하나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새 증거가 발견된 것은 아니다”라며 김씨의 형집행을 정지하지 않았다.

시민단체 ‘김신혜 재심청원 시민연합’은 이날 ‘김신혜 형집행정지를 요청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든 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신혜의 방어권을 위해 형집행정지를 재판부에 강력히 요청한다”며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달린 일을 19년 전과 똑같이 되풀이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후 법원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했다.

법원은 수사 과정의 위법성만 문제 삼았지만, 향후 재심 과정에서 김씨의 유·무죄를 가릴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심의 경우에도 일반 재판과 마찬가지로 검찰과 피고인 한쪽이라도 불복할 경우 항고가 가능하다. 이후 대법원 판결까지 받을 수 있다.

김씨는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 한 마을에서 부친에게 약을 먹여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사건 초기 범행을 모두 인정하더니 현장검증 직전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고모부가 허위 진술을 강요했고, 조사 과정에서 경찰의 강압이 있었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경찰로부터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누드사진을 퍼트리겠다고 협박 당하거나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이 영장도 없이 그의 집을 수색하고 문서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5년 11월 재판부는 “수사에 관여한 경찰관의 직무에 관련된 범죄가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