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호, 이승우와 백승호가 쫓아온다

입력 2019-03-25 16:28
나상호가 20일 경기 파주시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소집 훈련 전 이번 평가전 각오를 밝히고 있다. 뉴시스

나상호가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맡은 역할은 특별하다. 지난 시즌 프로축구 K리그 2(2부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던 스트라이커 포지션이 아니다. 최전방 바로 아랫선에서 공격의 순환고리로 역할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다.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이 즐겨 쓰는 4-2-3-1 포메이션에서 ‘3’라인의 왼쪽 측면이 그의 역할이다.

지난 22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볼리비아를 1대 0으로 이긴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에서도 그랬다. 벤투 감독은 평소 즐겨 쓰던 원톱을 포기했다. 손흥민과 지동원을 최전방에 위치시키며 투톱을 들고 나왔는데, 나상호는 이들의 바로 아래에서 왼쪽 측면에서 공격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중원 장악력을 최대한 높이겠다는 계산이었다. 상당히 공격적인 시스템이다. 직선적인 정면 돌파 움직임을 선호하는 나상호를 활용해 포스트 플레이에서 승부를 보려 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에서 불의의 부상 낙마 이후 모처럼 대표팀에서 기회를 잡았으나 확실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상대 수비에 고전하며 강점이던 일대일 돌파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수비 블록에 갇히는 장면이 수차례 연출됐다. 나상호가 제힘을 쓰지 못하다 보니 연쇄적으로 한국의 좌측 공격루트 전체가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공격의 물꼬는 오른쪽 측면으로 향했다. 한국이 완벽하게 허리 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하고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마무리 짓지 못했던 이유였다.

이승우가 22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볼리비아와 가진 친선경기에서 득점 기회를 놓친 후 아쉬워하고 있다. 뉴시스

결국 벤투 감독은 다른 선택지를 꺼내 들었다. 일찌감치 나상호를 제외했다. 후반 18분 벤치에서 대기 하고 있던 이승우를 투입했다. 공격권을 쥐고 있던 상황에서 이른 시간에 변화를 준 것은 나상호가 특히 부진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체돼 있던 한국의 좌측 공격은 이승우의 합류와 함께 역동성을 갖기 시작했다. 공격에 속도감이 생겼다. 체력적 우위를 바탕으로 쉴 새 없이 전방과 측면을 오가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다. 왼쪽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려는 움직임을 계속 시도했다. 후반 36분, 상대 수비수들 사이에서 공간을 찾아내 강력한 슛을 하며 존재감도 과시했다. 득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팀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슛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상호의 선발은 실패였다.

콜롬비아전에서 눈여겨볼 위치도 최전방 공격수들을 지원할 왼쪽 측면이다. 콜롬비아 미드필더진들의 개인 기량이 뛰어난 만큼 나상호보다는 수비에 안정감을 갖춘 전문 미드필더를 기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카를로스 케이로스 콜롬비아 감독 특성상 후방에 무게를 둘 확률이 높은 만큼 공격 기조는 유지할 전망이다.

대안은 충분하다. 볼리비아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이승우의 첫 선발을 비롯해 이청용, 이재성 등 베테랑 자원들이 대기 중이다. 이강인과 백승호에게도 기회가 돌아갈지도 관심사다. 백승호는 지난 20일 열린 대표팀 훈련에서 왼쪽 측면 미드필더를 소화한 바 있다. 소속팀 스페인 지로나에서 나서는 위치다.

나상호가 조금 더 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속팀 일본 J리그 FC도쿄에서 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다른 포메이션과 달리 나상호가 위치한 왼쪽 측면 미드필더는 벤투 감독에게 확실하게 낙점받은 선수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독보적으로 치고 나가는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가장 치열하며, 또 전술 변화 가능성이 가장 큰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나상호와 그를 쫓는 신예들의 뜨거운 경쟁이 시작됐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