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이강인이 또 나오지 못하더라도…

입력 2019-03-26 07:00
한국 축구대표팀의 이강인이 22일 울산 문구구장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벤치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국제축구연맹(FIFA) 3월 A매치 데이에서 이강인을 차출했다. 소속팀 스페인 발렌시아 CF에서 1군 등록을 마치고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자원이다. 만 18세 20일로 한국 축구 사상 7번째 어린 나이로 성인 대표팀에 선발됐다. 그의 출전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강인은 자신의 첫 A매치를 벤치에서 보냈다. 볼리비아와 대결한 지난 22일 울산 문수구장에서다. 소집명단에는 포함됐지만, 선발명단과 교체카드 모두 선택받지 못하며 데뷔전은 불발됐다. 친선경기로 진행되는 평가전의 경우 교체카드를 총 6장까지 사용할 수 있다. 3명의 교체만 가능한 정규 국제경기 하고는 차이가 있다. 벤투 감독이 이달 A매치에 평소보다 많은 27명을 소집한 것도 그러한 이유로 풀이된다. 가능한 많은 원석을 직접 눈으로 살펴보며 옥석을 가리겠다는 의지다.

벤투의 성향

벤투 감독은 자신의 원칙대로 선수를 선발해 조직력을 가장 염두에 둔 채 전술 구상을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술과 선수 구성으로 나서는 성향이 아니다. 새로운 선수를 실험하기보다는 기존 선수들이 갖춘 정체성을 우선시한다는 얘기다. 평가전이라고 여유를 부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콜롬비아는 이전 상대였던 볼리비아보다 객관적 전력상 몇 수 위에 있는 강호다.

벤투 감독은 볼리비아전을 앞두고 “이강인과 백승호의 선발은 없을 것”이라며 분명히 선을 그은 바 있다. 초기 구상에 이강인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 셈이다. 그리고 벤투 감독은 기존의 구상에서 선회하는 운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페인에서 불러들인 만큼 이강인에게 교체로나마 출전 시간을 부여할 가능성이 있다. 그의 출전 여부와 실질적으로 그라운드를 밟는 시간을 판가름 할 수 있는 것은 선제골이다. 선제골 시점에 따라 이강인의 출전 시간 역시 달라질 수 있다. 혹여 지고 있거나 한 골 차 싸움이 지속된다면 벤투 감독 성향상 과감한 변화를 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주장 손흥민을 비롯해 기존의 틀을 잡고 있던 이청용과 이재성, 황인범 등이 계속해서 공격을 이끌 가능성이 크다.

이강인이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거나, 후반 40분이 넘어서야 투입되더라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벤투 감독의 경기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스타일을 바탕으로 새로운 판을 짜기보다는 자신이 만들어둔 틀에 선수들을 끼워 맞춘다. 그가 ‘조직력’과 ‘정체성’을 수차례 강조했던 이유도 그래서다.

한국 축구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콜롬비아와 A매치 평가전을 하루 앞둔 25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공식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

비판도 있다. 전 대표팀 공격수인 이천수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뽑았으면 무조건 쓴다는 생각을 가지고 뽑아야 한다. 선수는 어느 정도 풀타임을 뛰어야 퍼포먼스가 나온다”고 밝혔다. “누구나 똑같이 기회를 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강인과 백승호에게 더 많은 출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철저히 선수로서의 관점이다. 감독은 다르다. 벤투 감독은 더욱더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중들의 바람보다 자신의 신념이 앞서 있다. 손흥민의 출전을 말릴 때도, 이승우의 선발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여론과의 소통 보다 자신과의 합의가 먼저였다. 그것이 벤투 감독이 성향이고, 그는 지금 자신의 축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대한축구협회는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 바라본 장기적인 관점에서 벤투 감독을 선택했다. 감독의 성향과 가치관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감독은 자신의 축구를 하되 그 결과 대한 책임만 질 뿐이다.

감독이 소집한 선수들은 각기 그 역할을 지니고 있다. 꼭 그것 역할이 실전에서 그라운드를 밟는 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소집했다는 것 자체가 해당 선수를 활용한 기초적인 전술 구상을 사전에 머릿속으로 끝마쳤다는 뜻이다. 이강인 역시 마찬가지다. 전술적 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만으로도 선발과 관계없이 뽑아 들 이유는 충분하다. 부름에 응하는 것은 선수의 선택이다. 벤투 감독 스스로 밝혔듯 이강인과 백승호의 선발 목적은 단순 기용이 아니다. 게다가 벤투 감독은 지난 아시안컵에서 선수들이 잇따라 부상으로 이탈하며 한 차례 곤욕을 치른 전례가 있다.

축구에서 ‘11’은 선발로 나서는 선수들의 숫자일 뿐, 절대 11명만으로 축구를 할 수 없다. 혹여 데뷔전이 불발되더라도 이강인에게 이달 A매치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벤투 감독이 “이강인을 어떤 포지션에서 뛰어야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뽑았다”고 밝힌 만큼 자신이 노려볼 수 있는 포지션만 확인해도 큰 수확이다. 벤투 감독이 2선 라인에 집중적으로 많은 선수를 소집하면서까지 중원 장악력에 힘을 쏟고 있는 만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강인에게는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선발에 앞서 우선돼야 할 과제다. 이는 이승우의 말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손흥민 형이 포워드로 가서 왼쪽 윙 자리가 비게 됐다. 모든 형이 경기에 나가고 싶어하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얼마의 시간이 주어지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도, 한국에서도 기회가 왔을 때 잘하고 싶다.”

볼리비아전이 끝난 후 이승우가 한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승우가 벤투호에 자리 잡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여느 막내처럼 팀 내 선수 중 사건·사고도 가장 많은 그였다. 지난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물병 차기’ 논란부터 경기 도중 중계 카메라에 잡힌 욕설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감정이 앞섰고, 어린 나이에 자신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팬들의 비아냥 속에 현명하게 대처할 줄도 몰랐다. 대중 앞에서 한 말과 행동들은 때로는 서툴렀다. 스페인 명문 FC바르셀로나에서 성장한 기대감에 강제적으로 대중의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들어왔고,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한 그들의 태도는 더없이 냉대했다. 축구에서 십 대 나이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명제를 간과했다.

보통 선수들이 대표팀 생활을 하며 평생 들을 비난을 이승우는 일찌감치 견뎌내야 했다. 지금의 이승우 말이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물론 아직도 그의 위치는 철저한 백업 요원이며, 다음 A매치에서도 소집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막내에서 탈피했고 발언도 성숙해졌다. 이승우의 이 말은 앞으로 이강인, 백승호와 같은 신예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일지도 모른다. 경기에 나서고 싶은 마음은 나이와 경력을 아우르지 않는다. 주장 손흥민을 비롯해 이청용, 이재성, 권창훈, 이승우, 황희찬, 나상호, 황인범, 백승호 등이 나설 수 있을 만큼 2선 경쟁은 치열하다.

앞서 팀에 안착한 이승우 역시 단계적으로 출전시간을 늘려나갔다. 이강인 역시 이승우와 마찬가지로 벤투 감독이 제시한 전철을 밟고 있을 뿐이다. 이승우, 이강인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 역시 점진적으로 팀에 안착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벤투의 스타일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이강인이 콜롬비아와 A매치 평가전을 하루 앞두고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NFC(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술적 이유

당장 자리 잡지 못하더라도 이강인의 추후 상황은 충분히 낙관적이다. 전술적 관점에서다. 만일 이강인이 신태용 전 감독이 이끌었던 지난해 러시아월드컵에 나섰더라면 그가 뛸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수비적으로 내려앉아 있다 측면으로 전개되는 역습 상황에서 이강인을 카운터로 활용하기에는 적합지 않다. 대인마크 수비와 신장 조건에서 약점을 보이는 이강인으로서는 4-4-2와 같은 전술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빠른 측면 전개에 능숙하지 않다.

벤투 감독은 측면보다 중원 장악에 더 힘을 싣는다. 기본적인 상황에서 대부분 볼은 측면이 아닌 중앙 지향적으로 전개된다. 후방부터 짧은 패스로 시작되는 빌드업 과정을 중요시한다. 이 부분에서 이강인의 장점과 부합한다. 직선적인 돌파에 약점을 띄지만 안을 보는 드리블을 전개하기 때문에 시야가 넓다.

그간 벤투 감독이 중앙에 기용했던 선수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곡선적인 움직임이 좋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재성, 황인범, 주세종, 기성용이 그렇다. 이들 모두 빠르게 볼을 치며 전개하는 유형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강인이 가장 좋아하는 중앙에 나설 수 있다. 손흥민, 황희찬, 이청용 등 측면에서 공격에 나설 선수들은 많다. 벤투 감독이 즐겨 쓰는 4-2-3-1 포메이션 중 최전방 뒷선인 ‘3’라인의 중앙에 자리한다면 실질적인 경쟁자는 이재성이다. 나상호 역시 그 자리에 설 수 있지만, 이는 벤투 감독이 어떤 시스템을 들고나오느냐의 차이다. 나상호는 공간을 활용하기보다는 포스트 플레이와 직접 슛을 노리는 성향이 강하다.

지난 볼리비아전에서는 그간의 플랜A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이 포착됐다. 벤투 감독의 전술 운용 변화를 고려할 때 지난 볼리비아전에서 처음 선보인 손흥민과 지동원의 투톱 정도가 상당히 놀라운 변화였다.

변화는 시스템에만 있었다. 원톱을 포기하며 황의조가 빠졌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특이한 것은 없었다. 모험적인 카드보다는 실리와 안정에 중점을 두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암묵적인 선언으로 볼 수 있다. 당장 이강인이 선발로 나서는 모습을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특별한 변화와 새로운 시도를 바라는 대중의 마음과 달리 자신의 철학을 고집하는 벤투 감독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선수단은 젊고 의욕적이고 공격적인 재능을 갖춘 선수들은 충분하다. 이란이 아시아를 넘어 스페인과 같은 강호를 고전시킬 정도로 막강한 수비력을 갖추는 데까지 7년이 걸렸다. 카타르는 오일머니에 힘입어 자국 축구가 급성장하는 와중에도 대표팀만큼은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수년을 팀에 머무르는 펠릭스 감독에게 전권을 이임했다.

새로운 얼굴들의 활약을 보며 전복적 통쾌함에 빠는 것 역시 스포츠가 가져다주는 매혹이지만, 벤투 감독은 아시안컵 실패에 이은 혹평 속에서도 화려함을 선택하지 않았다. 당장 진취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최종 목적지인 3년 후 월드컵에서 성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모든 계절에 순응하는 소나무가 질겼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잎이 무성한 여름이 아니라 차디찬 겨울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