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 C&C, 사실상 포괄임금제 폐지, 대기업 IT 계열사로는 처음

입력 2019-03-24 14:56 수정 2019-03-24 18:21
게티이미지뱅크

SK C&C가 대기업 IT 계열사로는 처음으로 포괄임금제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네이버나 넥슨 등 일부 대형 IT 기업들은 포괄임금제를 없애고 있지만,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의 IT 계열사가 이를 없애는 건 처음이다.

SK C&C 노조 관계자는 24일 “지난 15일 회사가 급여체계를 변경한다고 공지했다”며 “불법적으로 시행하고 있던 포괄임금제를 대폭 시정하고 회사 창립 이후 한 번도 지급하지 않았던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그 동안 포괄임금제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사측에 변경을 요구해 왔다.
민주노총 산하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 관계자도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65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IT계열사 중 포괄임금제를 없앤 것은 SK C&C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이란 계열사 자산까지 다 합쳐 10조원이 넘는 기업집단으로, 공정위에 따르면 65개 대기업집단의 총 계열회사 수는 1736개다. 네이버와 넥슨 등 IT 회사는 기업집단에 포함되지 않는다.

포괄임금제란 노동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업종에서 연장·야간·휴일 근로시간을 사전에 정하고 실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정해진 시간만큼의 수당(고정연장수당)만 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업무 중 휴식시간이 긴 경비원이나 시설관리인, 수행 운전기사 등이 포괄임금제 적용 대상이다. 노동현장에서는 1974년 포괄임금 계약을 인정한 대법원판결 이후 관행이 됐다.

대법원판결만 놓고 보면 IT업계 등 사무직에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면 안 된다. 노동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일반 사무직의 경우 포괄임금제 계약을 이유로 야근수당을 주지 않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IT업계는 업무 특성상 포괄임금제가 일반적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도 2013년 내놓은 ‘IT산업 근로시간 실태 및 개선방안’에서 다른 업계에 비해 IT업계는 장시간 근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IT 업계에 종사하는 사무직 근로자의 하루 평균 초과근로시간은 2.7시간으로 이를 주 단위 초과근로시간으로 환산하면 11.6시간 정도였다.

하지만 IT 노동자들의 살인적 야근이 사회문제화되고, 지난해부터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시행이 본격화되자 IT업계에도 근무 형태와 임금 지급 방식 변경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SK C&C가 급여체계를 변경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포괄임금제를 사실상 폐지에 가깝게 수정하기로 했다. 월 급여의 40% 수준인 고정연장수당(야간·휴일근로 수당)을 13%까지 낮추기로 했다. 대신 오후 10시 이후 심야시간이나 일요일 등 휴일에 근무한 것은 수당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회사가 창립한 이후 처음이다.

고정연장수당의 비율은 줄었지만 연봉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급여체계 변경으로 심야근로와 휴일근무에 대해 수당으로 별도 지급하는 만큼 월급과 연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오후 10시 전까지 연장근로한 것은 일한 시간만큼 대체휴무를 주기로 했다. 주 52시간에 맞춰 야근은 줄어들고 월급은 늘어나는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 C&C는 지난 18일부터 전국의 사업장을 돌며 바뀐 임금체계를 알리기 위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IT 기업인 네이버는 지난해 ‘선택적근로시간제’를 전면 도입한 데 이어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넷마블, 넥슨 등 게임개발사들도 하반기쯤 포괄임금제 폐지를 목표로 노사 간 의견을 조율 중이다.

IT업계의 기대감은 크다. 최근 IT업계에선 과도한 야근으로 내몰려 과로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과로자살이 발생했다. 초과근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어 IT 인력들이 중국이나 미국 등 해외로 빠져 나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넥슨, 네이버 등 주요 IT기업들에 이어 SK C&C와 같은 IT 대기업까지 포괄임금제를 폐지함에 따라 IT업계 근무형태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소 SI업체 대표는 “SK C&C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표적 시스템통합(SI) 업체”라며 “자사 직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면서 업계에도 이 같은 환경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물론 IT업계 전체가 포괄임금제 폐지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한 게임개발업체 대표는 “포괄임금제 폐지로 비용상승 이슈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은 상관없겠지만 중소기업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창의적인 성과가 중요한 IT업계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만 내도록 일하게 하면 기계적인 아웃풋만 내놓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괄임금제 폐지로 고정연장수당을 둘러싼 노사 간 마찰도 생길 수 있다. 연봉에 포함됐던 고정연장수당이 없어지면서 연봉 자체가 깎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네이버나 위메프 등은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동시에 고정연장수당을 기본급에 산입하기로 했지만 카카오는 고정연장수당을 기본급에 넣을 것인지를 두고 노사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 C&C 역시 고정연장수당을 없애면서 하루 1시간 연장에 대해선 수당을 별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편법 조항’을 넣었다. SK C&C 측은 “IT 산업 특성을 고려해서 반영한 것이며 앞으로도 외부 사업 환경의 변화에 맞춰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