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는 아직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선발’로 나서지 못했다. 2선 백업 요원의 임무를 맡아 후반 조커로 활약했다.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 체제에서도 그렇다. 선발보다 ‘변속 기어’ 역할이 그에게 주어졌다. 벤투 감독은 이승우를 활용해 공격의 속도를 높인다.
그간 이승우의 출전 기록을 살펴보면 투입돤 시점은 대개 비슷하다. 중원을 장악하고도 득점이 없을 때다. 전체적인 흐름을 가져갈 수 있으면서 보다 창의적인 전진 패스를 필요로 할 때. 그 시점에서 이승우가 나선다.
1대 0으로 승리했던 22일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도 그랬다. 후반 41분 이청용의 헤더골이 터지기 직전까지 상황은 쉽지 않았다. 볼리비아는 전체 슛이 5개에 그칠 정도로 잔뜩 내려앉아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 쉽사리 득점이 터지지 않았다. 축구는 결국 골을 넣어야 이긴다. 더 좋은 경기를 한 팀이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 이날 한국은 승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완벽하게 점유율을 가져가며 경기를 압도했음에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마무리가 아쉬웠다.
벤투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 교체 카드를 일찌감치 꺼내 들었다. 후반 18분 나상호를 대신해 이승우를 투입했다. 지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공격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전술적 변화를 꺼리는 벤투 감독 성격상 꽤 대담했던 선택이었다. 이승우는 그간 벤투호에서 후반 40분이 넘어서야 교체로 투입됐다. 출전 시간이 대폭 늘어난 셈이다. 첫 번째 교체 카드가 이승우에게 돌아간 것도 처음이었다. 지난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때보다 그의 입지가 훨씬 상승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승우의 활약은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과도한 제스처 등 아쉬운 장면도 있었지만, 공격에 속도감을 불어넣었다. 교체 투입된 만큼 더욱 악착같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측면에만 정체되어 있지 않고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려는 움직임을 계속 시도했다. 볼리비아 수비진들은 체력적 우위를 바탕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이승우를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움직임에서 이승우 특유의 승부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후반 36분 상대 페널티박스 안에서 위협적인 오른발 슛을 시도하기도 했다. 상대 수비수들을 제쳐낸 후 곧바로 골대를 향해 날렸지만, 너무 힘이 들어갔다. 득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팀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슛이었다. 벤투 감독이 이승우에게 기대한 부분도 이런 점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속팀 이탈리아 헬라스 베로나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자신감이 차오른 모습이었다. 결국 한국은 이청용이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승우는 솔직했다. 경기가 끝난 후 더 뛰고 싶은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히 더 많이 뛰고 싶다”며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얼마의 시간이 주어지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도, 한국에서도 기회가 왔을 때 잘하고 싶다”고 밝혔다.
벤투 감독은 경기마다 특별한 변화를 시도하는 성격이 아니다. 평가전이라고 여유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에게 모든 경기가 실전이다. 항상 최상의 전력으로 나선다. 기존 선수들을 바탕으로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런 그의 성향을 고려해 봤을 때 당분간 이승우가 선발로 나서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승우에게 긍정적인 상황은 팀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상승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점이다. 추후 어떤 식으로 든 출전 시간을 점차 늘려나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앞으로의 활약이 중요하다. 지금은 벤투호의 변속기어로서 교체카드로서의 임무에 충실히 하는 것이 첫 번째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