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엔 특검, 폭로엔 폭로…얽히고 설킨 정치권 의혹들

입력 2019-03-23 00:15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여의도 발 ‘의혹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폭로에 폭로가 덮어지고, 특검엔 특검으로 맞서고 있다. 문재인정부 집권 3년차에다가 21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야 간의 치열한 정치 공방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사실 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야말로 ‘의혹 제기’ 수준에서 여야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겨누고 있다. 황 대표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제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다. 여당은 수사 무마 과정에 황 대표도 개입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KT 노조는 김성태 한국당 의원 자녀의 채용 과정을 문제 삼은 데 이어 황 대표와 홍문종 의원의 자녀나 지인들도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제1야당인 한국당은 국회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의 해외 이주 문제와 사위 서모씨와 관련된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블랙리스트 작성 여부도 추궁하고 있다. 또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상대로 경찰이 벌인 수사 결과가 무혐의 처분되면서, ‘정치 수사’였다고 반발하고 있다.

여당이 겨냥하고 있는 황 대표 관련 의혹이나 야당이 겨누고 있는 문 대통령 친인척 관련 의혹 모두 관련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정국의 핵’으로 떠오를 만큼 폭발성이 큰 사안들이다.

여당도 야당도 “특검 도입” 주장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에 여러 사안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특히 그 당시에 민정수석을 했던 분과 법무부 장관을 했던 분이 법무부 차관 경질되는 과정을 잘 몰랐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라고 말했다. 김학의 전 차관 부실 수사 의혹 과정에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 대표와 민정수석이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발언이다. 이어서 이 대표는 “차관이 경질되는데 장관과 민정수석이 모르고 있다면 누가 안다는 말입니까”라며 “이 점에 대해서도 당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가 직접 특검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미 민주당은 논평이나 발언을 통해 공개적으로 ‘김학의 특검’을 언급한 상태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지난 20일 라디오에 출연해 이 사건과 관련해 “필요하다면 국회 차원의 청문회나 국정조사, 더 나아가서 특별검사도 임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7일에도 논평을 통해 “당시 김 전 차관의 직속상관이었던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의 수사 상황을 보고 받고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부실 수사에 개입한 정황은 없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국회 청문회나 특검까지 가야할 사안"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맞서 한국당은 ‘황운하 특검’ ‘이주민 특검’을 거론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지방경찰청은 당시 울산 시장이던 한국당 소속의 김기현 후보와 관련된 비리 사건을 수사했다. 경찰이 당시 3개월 가량 수사를 벌였는데, 검찰의 보완 수사 지시에도 불구하고 기소 의견으로 관련 사건을 송치했다.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의 송철호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검찰은 모두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은 황운하 현 대전지방경찰청장이다.

김 전 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황 청장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계획적으로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 추단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황 청장은 경찰청에 있을 게 아니라 검찰청 조사실에 가서 빨리 수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만약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특검으로 밝힐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한국당은 또 드루킹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이주민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특검도 언급하고 있다. 특검 대상은 이 전 청장이지만, 사실상 ‘제2의 드루킹 특검’으로 볼 수 있다. 드루킹 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를 부각하며 문재인정부와 여권 핵심 인사인 김경수 지사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촉즉발’ 또 다른 의혹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

당장 재수사나 특검 도입까지 거론되지는 않더라도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의혹들도 있다. 곽상도 한국당 의원이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딸 다혜씨와 사위 서모씨에 대한 의혹이 대표적이다.

곽 의원은 지난 19일 대정부질문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언급했다. 곽 의원은 “다혜씨의 해외 이주로 경호 비용이 9억원 정도 늘어난다”고 지적했고, 다혜씨 남편인 서씨와 관련한 취업 특혜 의혹도 제기했다. 과거 근무하던 게임 회사가 특혜를 받은 의혹이 있고, 이후 외국 항공사에 입사하는 과정에서도 취업 청탁이 이뤄진 것으로 의심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년 넘게 검사를 하셨다는 분의 주장에 증거는 보이지 않고 소문과 추측만 가득하다”며 “부디 증거로 말해 달라”고 반박했다.

야당은 또 문재인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관련해 검찰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 결과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해 말 김태우 전 특감반원의 폭로로 시작됐다. 야당은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직적으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특히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이라는 제목의 환경부 내부 문건을 공개하며 광범위하게 블랙리스트가 작성됐다고 총공세를 펼쳐왔다.

반면 청와대와 여당은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합법적인 체크리스트”라며 통상적인 업무였다고 반박했다. 현재 검찰은 산하기관 임원 교체가 청와대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하고 있다. 검찰이 ‘블랙리스트’로 결론을 내린다면 야당의 공세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고, 검찰이 ‘체크리스트’로 결론을 내린다면 ‘부실 수사’라며 거세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맞서 여당은 다수의 야당 인사들이 채용 비리 등에 연루됐다는 KT 노조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김성태 한국당 전 원내대표의 딸이 부정한 방식으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홍문종 의원과 정갑윤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황 대표의 아들이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황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뒤 법무팀에 배치된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론된 인사들은 모두 특혜나 부정한 방법은 없었다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불씨는 이미 국회로 번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다음달 4일 아현지사 화재와 관련한 KT 청문회를 열 예정이었지만, 야당 인사들과 관련한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청문회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 소속 과방위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한국당이 법안소위 논의를 거부하면서 돌연 청문회 개최도 함께 거부했다”며 “KT 채용비리 의혹이 김 전 원내대표뿐 아니라 황 대표로까지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저의”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반박 성명을 통해 “과방위 일정 취소 사태의 원인은 민주당의 법안소위 무산 시도에 있다”며 “민주당은 기존에 합의한 합산규제 재도입을 위한 법안소위를 KT청문회 이후로 미루자고 했고, 한국당이 이를 거절하자 결국 소위를 무산시켰다”고 주장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