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가 정기주주총회에서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에 완승을 거뒀다. 엘리엇이 제시한 고배당 지급과 사회이사 선임안이 모두 부결됐다. 아울러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신규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본격적인 ‘정의선 시대’의 막을 열었다.
현대차가 22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개최한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이 제안한 안건은 서면표결에서 모두 부결됐고 이사회 제안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현대차는 이날 ‘재무제표 및 기말배당 승인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내·외 이사 선임의 건’ 등 안건을 상정해 의결했다.
재무제표 및 기말배당 승인의 건이 우선 논의됐다. 앞서 현대차 이사회는 보통주 기준 현금배당을 주당 3000원으로 제안했다. 반면 엘리엇은 현대차 이사회 제안한 배당금의 7배가 넘는 주당 2만1967원을 제안했다. 앞서 세계 1위 의결권 자문사 ISS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은 엘리엇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에게 제안한 고(高)배당안에 반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배당에 대한 서면표결에서 현대차 이사회 방안은 참석주주들로부터 86% 지지를 받으며 통과됐다. 엘리엇은 찬성률 13.6%를 얻는 데 그쳤다. 의결권 자문사는 물론 주주들도 엘리엇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현대해상화제보험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제42기 주주총회에서도 배당 관련 주주 69%가 현대모비스 이사회가 제안한 배당안(주당 4000원)에 찬성했다. 이로써 현대차·현대모비스로서는 고배당 지급 가능성이 사라지며 부담을 덜게 됐다.
현대차는 사외이사 선임 표결에서도 엘리엇을 가볍게 따돌렸다. 앞서 ISS는 엘리엇이 추천한 후보 3명 중 2명은 찬성하고 현대차가 추천한 2명에 대해선 반대표 행사를 권유하며 표 대결이 주목됐다. 그러나 현대차 이사회가 추천한 윤치원 UBS 그룹 자산관리부문 부회장과 유진 오 전 캐피탈그룹 인터내셔널 파트너,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 교수 등 3명은 각각 90.6%, 82.5%, 74.4% 압도적인 찬성률로 선임됐다.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도 현대모비스 이사회가 추천한 브라이언 D 존스 아르케고스캐피탈 공동대표와 칼 토머스 노이만 전 오펠 최고경영자(CEO) 등 2명이 선임됐다. 현대차·현대모비스 이사회에 들어가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엘리엇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이사 정원을 늘리자는 엘리엇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날 현대차·현대모비스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1999년 자재본부 구매실장으로 현대차에 입사한 지 20년 만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지배구조 개편 작업 등에도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최근 미래차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2023년까지 5년간 총 45조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