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배우가 중요하잖아요, 배우를 잘 들어내는 것이 작가와 연출을 잘 표현해 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창작산실 <가미카제 아리랑>(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을 공연 할 때 정범철(44) 연출을 만났다. 대학로는 26대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출마 후보자 얘기로 뜨거웠고 후보자들은 선거사무소를 대학로 중심으로 개소하며 치열한 선거운동을 펼쳤다. 연극계는 전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 사퇴하면서 몸살을 앓았고, 협회를 바라보는 불신의 전류는 강했다. SNS로 소리는 커져 갔고 연극인들은 변화와 개혁을 외쳤다.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점화된 서울연극협회와의 아르코극장 대관탈락 사태와 대립, 연극인 블랙리스트, 창작 지원배제 논란, 연극계 미투 운동 등 크고 작은 사태가 겹치면서 연극인 전선은 폭발됐고 ‘연극인연대’로 저항했다.
전국 연극인들은 소통할 수 있는 한국연극협회, 대한민국극단과 연극인을 대표할 수 있는 협회를 외쳤고, 수장을 선출하는 선거에 뜨거운 관심으로 나타냈다. ‘연극인 연대’와 지역 ‘연극협회 지회’는 세 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공약검증과 선거토론회를 릴레이로 개최해 유튜브와 페이스북 으로 생중계되면서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 ‘전국 연극인들이 함께하는 선거’라는 캐치프레이로 연극인들 참여를 이끌었다.
‘대의원 선거제도’를 개선해 연극인 다수가 참여하는 ‘직선제 선거’로 개선해야 한다는 소리도 컸다. 후보들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지난달 25일에 치러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선거는 전국 연극협회 지부와 지회에서 선발된 485명이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을 선출에 투표권을 행사했다. 1차 투표결과는 1, 2위 후보가 5표 차이로 나타났다. 과반수 투표 결과를 얻지 못해 2차 투표를 거쳐 오태근 후보(한국예총 충정남도 연합회장)가 212표를 얻어 4표 차이로 손정우(경기대 교수)를 제치고 26대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에 당선됐다.
정범철 연출을 인터뷰를 한 것은 공연을 본 뒤 일주일 뒤였다. 40대 연극인이 어떤 후보자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극발전소 301’ 대표이면서도 작가이자 연출가로 40대 연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지지 후보자를 묻는 말에는 웃음과 침묵으로 답했고 이야기를 듣는 편이였다. 작은 키에 다부진 단단함이 흘렀고 표정은 부드러웠다. 그를 아는 연극인은 “정범철 연출은 판단을 신중하게 한다”고 했고, 한 연극배우는 “몸을 던질 정도로 성실하고 가정적”이라고 표현했다. 극장 1층 커피숍에서 공연시작 두 시간을 남겨두고 만났다. 표정은 작가적인 유연함도 보였고, 작품을 말 할 때는 날카로움도 느껴졌다.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에게 메시지로 물었고 답장이 날아왔다.
-26대 한국연극협회 이상으로 오태근 후보가 선출됐다. 두 후보의 결과가 박빙이었다. 대학로를 이끌어가는 40대 연출 그룹으로 ‘한국연극협회’에 바라는 것을 말해 달라.
“선거가 치열했던 것 같아요. 지난 한국연극협회의 불신이 깊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연극협회가 전국 연극인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되어야 해요. 연극인 복지, 투명한 지원과 심사제도, 그리고 다양한 협회 정책으로 많은 연극인들이 참여하고 함께 하는 한국연극협회가 되어야 하고요. 공약과 정책이 반드시 실현되어서 믿는 협회로 만들어 줬으면 해요”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작, 신은수) 은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 일본군 조종사인 실제 인물 탁경현(1920~1945 卓庚鉉)과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3명의 조선인 특공대원들의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탁경현의 일본이름은 미쓰야마 히로부미(光山博文)로 1920년 경남 사천에서 출생해 6살 때 가족들과 일본 교토로 건너갔다. 교토 약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학도병으로 징집된 탁경현은 특별조종견습관 1기생으로 일제 패망 3개월 전 1945년 5월11일 오키나와 비행장 서해상에서 가미카제로 출격하다가 사망했다.
1945년 일본 천황이 폐망을 선포하는 그날까지 가미카제 특공대 희생자는 3천8백여명으로 조선인은 탁경현을 포함해 18명으로 알려져 있다. 탁경현의 일대기는 2001년에 ‘호타루’(반딧불이) 라는 영화로 일본서 제작되어 알려지기 시작했고 국내방송에도 소개됐다.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黑田福美)가 경남사천에 추모비 건립을 추진했으나 철거되면서 위령비는 경기도 한 사찰로 옮겨졌다.
<가미카제아리랑> 무대는 일본 서남쪽 큐슈시의 최남단에 위치한 가고시마 현(縣) 치란(知覽)의 조선인 식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치란에는 조선인 식당이 없었다. 현재 치란에는 가미카제 특공대 ‘평화회관’이 있다. 이 자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살특공대 위한 비행사 양성학교였다. 가고시마에서 남쪽으로 1시간 달려가면 태평양 전쟁당시 비행학교와 가미카제 특공대의 기지가 있던 작은 마을로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곳에 특공대원들이 드나드는 일본인 식당이 있었고 작가적 상상으로 ‘조선인 식당’을 무대배경으로 연결했다. 가미카제는 하늘을 나는 자살특공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군은 필리핀에 연합군이 상륙하자 막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일본을 구해낼 하늘을 나는 ‘신의 바람’ 이 절실했다. 신풍(新風) 즉, 가미는 신(神)이며, 카제는 풍(風)으로 ‘신이 일으키는 하늘의 바람소리’를 내며 천황( 天皇)을 위해 몸을 던졌다. 정범철 연출과 커피를 주문하고 마주 앉았다.
-연극 <가미카제 아리랑> 무대배경이 ‘치란’ 조선인 식당이다.
“일본인 식당인 토미야(富屋食堂) 식당만 실제로 있었다. 가미카제 특공대 군인들이 왕래를 했고, 탁경현이라는 인물이 실제 자주 찾았다. 일본인 주인(토메)씨의 다큐멘터리 기록에도 출격하기 직전에 아리랑을 부르며 울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가미카제 특공대의 역사적 자료를 보고 작가적 상상력으로 극화했고 조선인 식당 설정은 작가적 상상력이다”
- 무대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목포의 근대거리 ‘적산가옥’(敵産家屋)을 떠올리게 한다.
“토미야 식당은 현재 박물관과 평화회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치란 ‘평화회관’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일본인 식당 주인이 탁경현이 하모니카를 부르며 노래를 부르던 사진과 유품을 실제로 보관했다. 극중에서도 탁경현이 식당 주인한테 유품을 보관해 달라고 하는데 실화다. 신은수 작가한테 희곡을 받고 나서 이번 작품에서 박성웅과 재혼한 극중 인물 김유자의 딸로 출연한 김채이(마리 역) 배우가 일본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자료 사진을 많이 찍어 왔는데 2층 가옥으로 된 일본인 식당을 무대디자이너가 참고해서 고증을 받고 일본 지붕식 가옥을 참고했다”
<가미카제 아리랑> 무대는 조선인 김유자(이항나 분)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다. 목재 탁자 3개가 보이고 무대 좌측과 앞 공간은 식당을 오고가는 골목이다. 고향 음식 맛을 잊을 수 없었던 탁경현을 비롯한 세 명의 조선인 특공대원은 그리움과 애환을 쏟아내고 김유자는 헌신적인 조선의 어머니로 남편 박성웅(변주현 분)은 친일파를 환기시킨다.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들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하늘을 향해 출격하던 1945년 4월부터 봄부터 8월15일 해방까지 다루고 있다.
극중 인물 박성웅은 해방을 맞았는데도 “해방? 그 놈의 해방 때문에 다 틀어져 버렸어! 광산이고 뭐고 돈도 한 푼 못 받고(중략) 난 돌아가지 않아. 조선인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무슨 낯으로..” 라고 말하고 배편으로 조선으로 돌아가는 시점까지 장면으로 다룬다. 영화 <호타루> 에서는 치란의 일본인 식당인 ‘토미야’가 조선인과 일본인 특공대원들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탁경현도 오키나와로 출격하던 전날 조선임을 밝히고 ‘아리랑’을 불렀다는 증언과 기록이 있고 치란 평화회관에는 사진이 걸려있다.
-무대는 상상을 통해 실제를 만드는 공간이다. 변화 없이 조선인 식당에서 인물의 내면으로만 흘러 가다보니까 심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의도다. <가미카제아리랑>은 작가가 조선인 식당을 배경으로 쓴 이야기다. 연출 디자인도 의도적으로 죽음이 임박한 조선인 특공대원들의 기구한 운명과 애환을 그렸다. 천황을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특공대원들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지만 일본말을 쓰면서도 조선인 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한 인간으로 죽음의 불안함은 출격이 임박 할수록 삶의 애착과 고뇌, 고향의 그리움이 깊어 질 수밖에 없다. 작가 의도를 연출로 부각하기 보다는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선인이지만 탁경현은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원이고 장교다. 역사적 논란도 있다. 탁경현이 오키나와로 출격하기 전까지 다른 조선인 특공대원들에게 식당을 소개하고 극을 끌고 간다. 식당을 드나들며 하모니카를 부르며 고향을 그리워하고 밀려오는 죽음을 노래하는데, 연출이 희곡을 조용하게 따라간 것 같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도 인간이다.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조선인 특공대원들의 애환과 슬픔을 녹여내고 싶었다. 출격이 임박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조선의 고향을 그리워한다. 신은수 작가 의도를 살리고 싶었다. 연출은 작가의 상상과 의도를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군복을 입었지만 일본인이 될 수 없었다. 죽은 순간까지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다. 역사적 논란도 있다. 특공대원으로 일본 천황을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내면에는 시대의 아픔이 녹아있다. 연출로 희곡의 맥락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연극적 상상력 보다는 희곡이 끌고 가는 방향으로 담아내려고 한 의도는 읽힌다. 연출 시선으로 무대와 이야기를 넓힐 수 도 있었을 텐데.
“작가 의도를 살리고 싶었다. 연출로 보태려고 했던 것은 없었다.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삶을 연출로 정직하게 보여 주자고 생각했다. 죽음이 임박해 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탁경현은 조선인 식당을 넘기려는 박성웅 한테 일본 헌병대 문제를 해결해 주고 몇 개월 동안 식당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다. 딸 마리한테 식당을 드나들던 조선인 특공대원들을 기록(일기)으로 남겨달라고 제안한다. 설정이다. 작가의 의도를 무대로 형상화시키는 게 연출 목적이었다. 시선으로 바꾸며까지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탁경현 일대기와 가미카제 조선인 특공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많다. 무대 배경 시점도 1945년 봄부터 8월15일 해방까지인데, 소설을 한번 읽어 봤다는 느낌이다. 현재 시점에서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들의 삶을 왜 다루려고 했나.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모른다. 다큐멘터리로 방영이 되고 책도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아는 분은 소수다. 자료나 책은 많지만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를 모른다는 것을 현실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공연을 통해서 조선인 특공대 <가미카제 아리랑>에 공감을 하셨다고 말을 하시고 역사적인 사실을 연극으로 알게 됐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으로 공연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청년 ‘탁경현’이 살아갔던 시대와 현재 ‘청년세대’를 연결하는 고리가 있나.
“역사적 사실이 현재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작품을 읽고 생각 했다. 일제 강점기시대의 젊은이나 지금 청년들은 국가적인 상황과 현실에서 희생을 당하고 있다고 점에서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청년들이 힘들어 하는 취업문제, 삶의 불균형과 태생적인 흙수저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세계적인 경제 한파에서 수많은 젊은이(청년)들이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가기에는 고달픈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전쟁시기가 아님에도 말이다”
-당시, 시대상황과 현재 청년들이 느끼는 통증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 시대상황은 다르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그 절망감에서 느끼는 통증은 같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의 의미는 역사책, 우리나라 국사책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가미카제라는 역사적 사실에 조선인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아픔을 들여다보고 시대와 한 인간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작품이 건져 올린 의미라고 생각한다”
-극중에서 탁경현이 출격하기 전까지 외로움, 죽음의 고립과 슬픔, 아픔을 하모니카로 아리랑과 도라지를 네 번 부르는데 죽음이 다가올수록 리듬이 슬퍼지더군요. 탁경현 인물구축 과정은 어땠나.
“하모니카로 부르는 소리에 감정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어둡지 않게 즐기면서 하라고 했다. 연습하면서 죽음과 쓸쓸함의 강도를 더 느껴보라고 가볍게 얘기한 정도였는데, 배우가 극중 인물을 잘 소화한 것 같다. 김경남 배우인데, 5년 정도 되는 극단 단원이다. 맡았던 배역 보다 힘들었다고 들었다. 실존인물이기도 하고 탁경현이 조선인 이면서도 일본인 특공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대상황과 혼란을 겪고 있는 심리적인 내면과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들었다. 연출로 연기를 만족스럽게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해방이 되고 조선인과 가족들이 가방을 들고 배를 타기 위해 떠나는 장면으로 끝이난다. 솔직히 강한 인상의 장면과 무대로 이어졌으면 했다.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를 상징하는 파격적인 무대나 역사를 입체적으로 뚫고 나오는 조선인 특공대원 들의 삶이 연출적인 시선으로 확장되길 기대했다.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무대는 연습과정에서 상상만 했다. (웃음) 일단, 대본에 그런 장면이 없었다. 의도를 충실하게 따라가려고 했다. 장면을 만들고 연출적인 시선을 작품에 투영하는 것은 할 수도 있지만 예산도 빠듯했다. 확장된 무대와 장면을 만들어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관객에게 공감시킬 확신이 없었다. 잔잔하게 무대를 끌고 가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작가 의도를 방해하면서 연출적인 표현을 살리고 싶지 않았다. 희곡을 따라가더라도 전달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연출을 했다. 배우들이 잘 그려냈다”
-조선인 식당을 운영하는 박성웅(변주현 분)은 친일파로 묘사된다. 김유자(이항나 분)과 재혼을 하고 식당도 팔아넘기려 하고 조선인을 싫어하고 억압하는 인물이다. 반면, 김유자는 조선의 헌신적인 어머니 상 일 수도 있지만 부각되지 않았다. 특히 박성웅 인물을 부각하고 가족관계 구도를 더 연결해도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는 관객 분들도 많았다. 재혼한 이들 가족의 사연이 깊은 이야기로 연결될 수도 있었는데 인물구도와 관계들이 발전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 작품이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 이야기 인데 두 사람 사연을 극으로 부각시키면 작가 의도하고 다르게 본질이 흐려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아픈 사연 정도만 대사로 들어냈다. 전처 딸이지만 재혼 후 김유자가 어머니 소리도 듣지 못하고 딸(마리)을 헌신적으로 키워가는 정도로만 이들 가족사를 들춰냈고 두 사람의 관계와 아픔에 적절한 선을 유지하려고 했다”
-작가가 연극적 상상보다는 드라마 문법이 강한 것 같다. 극중에는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인 김상필(유키 쇼히츠, 한일규 분)을 찾으러 형 김상열(리민 분)이 조선인 식당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설정되는데 두 사람이 큰 갈등 없이 끝난다.
“초고를 받아서 첫 리딩을 할 때는 90페이지 분량으로 2시간 40분이 걸렸다. 작품에는 각 인물들의 사연들이 탁경현 죽음 이후에 깊게 담아내고 있다. 작가 의도는 살리면서 각 인물들의 사연들을 덜어냈다. 40분 정도 이야기를 덜어내도 충분히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한 사람이 아니다.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군상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작가도 동의했다. 각 인물들 사연이 다 섞이기에는 극 후반에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핵심만 들어내도 이야기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희곡 작가와 연출의 경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웃음) “제가 작가와 연출을 병행한다. 작가로 작업할 때는 최대한 연출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연출을 할 때는 반대가 되는 스타일이다. 작가는 첫 번째 창작자이고, 삶에 설계도를 짜는 사람이다. 연출은 그 설계도를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시각적으로 공연화 작업을 해야 한다. 연출로 신은수 작가가 그려놓은 설계도 의도를 살리면서 공연으로 구현하려는데 초점을 뒀다. 연출의 시선으로 더 작품에 얹으려고 하지 않았다”
-연출마다 희곡을 무대로 구현하고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특징이 있다. 정범철 연출 특징을 얘기해 달라.
“인물들의 감성적인 내면을 꺼내려고 한다. 희곡에서 살아가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매력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전달하는 게 연출 포인트다. 연극은 배우가 중요하다. 이번 작품도 인물구현에 초점을 맞췄다. 무대에서 배우들을 들어내게 하는 게 연출가와 작가를 보이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이야 말고 배우들이 끌고 가는 작품이다”
-대한민국 연극의 소리가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앞으로 ‘극 발전소 301’을 어떻게 끌고 갈 건가.
“작년이 극단 10주년이었다. 극단의 방향성과 지금까지 해온 것을 정리한 글을 써서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올렸다. 극단 색깔이 실험극, 고전극, 사실주의 극으로 특정 장르를 표현하는 극단으로 규정되고 싶지 않다. 지금 시대는 예술성, 작품성을 전제로 대중을 안고 가는 시대다. 그 접점을 추구하면서 창작극을 꾸준하게 하고 싶다. 극단의 방향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죽을 때까지 연극을 하고 싶다. 연극을 다양한 색으로 경험해 보고 싶다. 극단이 특정한 색으로 규정된다면 깨는 것도 부담될 수 있다. 앞으로 20년은 더 지나봐야 방향이 명확해 질 것 같다”
-30년 전이나 요즘, 연극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창작산실을 공연한 정범철 연출도 그런가.
“힘들다. 전 세계적으로 연극을 하면서 힘들지 않은 나라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가 연극과 지원정책은 뒤지지 않는다. 국가에서 문화예술 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려고 하지만 많은 연극인과 배우들이 마음껏 창작할 수 있도록 혜택을 받기에는 쉽지 않다. 지원과 복지적인 문제는 예전보다 늘어났지만 그만큼 연극인과 단체도 늘어났다. 다양한 목소리도 많아지고 현실상황도 다르다. 연극창작 지원사업도 대상과 어디까지 지원해야 하는지 쉽지 않은 문제다. 연극인들이 공감하수 있도록 정책체계를 잡는 과정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공존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범철 연출은 2006년도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살해당했다>로 ‘옥랑 희곡상’을 받으며 희곡작가로 등단했다. 경기대학교 연극반에서 연극과 무대를 익혔고, 예술대학교 극작과로 재입학해 작가수업을 받았다. 존경하는 희곡작가는 이강백 선생으로 졸업한 뒤 2008년도에 ‘극 발전소 301’를 창단해 옴니버스 창작극 <버스가 온다>를 출발로 지난해 창단 10년 동안 서른여섯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작품공연으로는 88회를 전국을 누볐다.<만리향>이 그의 대표작품이 됐다.
이 작품으로 2014년도에 서울연극제 연출상을 받았고 이듬해 선욱현 작 <돌아온다>로 연속 2관왕(연출상)에 오르면서 정범철을 대학로에 각인(刻印)시켰다. 배우중심으로 섬세하게 무대에 올려놓는 시선이 좋았고 따듯하면서 연출로 요리로 하는 솜씨가 신선한 맛을 풍기게 했다. <분홍나비 프로젝트>,<원탁의 기사>, <병신3단 로봇>, <인간을 보라>,<로미오와 줄리엣을 살해당했다>, <고양이라서 괜찮아> 등 다양한 작품을 쓰고 연출을 해오고 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