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매리너스가 수비에 들어서는 4회말, 상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 스캇 서비스 시애틀 감독이 덕아웃에서 걸어 나와 외야 한편을 가리켰다. 서비스 감독이 가리키는 자리에 서 있던 이치로 스즈키(46)는 조용히 시애틀 덕아웃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경기장에 있던 모든 관중과 선수단이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천재’ 이치로가 20일(한국시간) 일본 도쿄돔에 모인 자국 팬들 앞에서 7년만의 MLB 정식 경기를 치렀다. 동료들을 하나하나 껴안고 덕아웃에 앉은 이치로는 경기 내내 웃는 얼굴로 팀의 경기를 묵묵히 지켜봤다.
이치로는 지난해 5월 선수 생활을 중단하고 시애틀 회장의 특별 보좌로 일하면서도 선수단과 동행하며 훈련을 이어갔다. 이치로는 당시 “야구를 계속 연구할 것이다. 40대 선수가 꾸준한 훈련을 거치면 몸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평소 자신의 등번호(51)처럼 “51세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고 말해온 이치로는 결국 지난 1월 시애틀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런 이치로는 일찌감치 발표된 대로 개막전 9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이치로가 3회초 타격 준비를 시작하자 관중들은 경기가 아니라 이치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이어 이치로가 타석에 들어서면서 도쿄돔에 모인 4만5000여명의 관중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보냈다. 이치로 특유의 타격 준비자세 중에는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MLB 역사상 최고의 아시아 선수에게 걸맞은 환영 인사였다.
지난 1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에서 무안타를 기록한 뒤 이치로가 남긴 말대로 “내일은 경기장에 오지 못할 수도 있는” 고국의 팬들 앞에서 안타를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겠지만 어느새 50세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스윙은 이전만큼 날카롭지 않았다. 이치로는 첫 타석 힘없는 2루 플라이로 물러났다. 그나마 3회말 강력한 우익수 송구로 체면치레를 했다.
시애틀이 3회초 대거 5득점으로 폭발하며 이치로는 바로 다음 회 두 번째 타격 기회를 잡았다. 무사 1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치로는 3볼 1스트라이크 카운트에서 투수의 공을 4번 연속 걷어냈다. 타구에 몸에 맞기도 했지만 선수 생활 중 수차례의 잔부상에도 경기에 거의 빠지지 않은 그답게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이치로는 9구째 볼을 골라 출루에 성공했다. 팬들이 고대하던 안타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타격기계’의 모습을 조금은 남겨둔 셈이다.
이치로는 2루까지 진출했지만 추가 득점에는 실패하고 다음 회 교체됐다. 미국 중계진은 “오늘이 이치로의 마지막 경기는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치로는 21일 선발 등판하는 일본인 투수 기쿠치 유세이의 뒤를 잠시라도 지킬 가능성이 높다.
한편 시애틀은 이날 3회초 만루홈런을 날린 도밍고 산타나의 활약에 힘입어 오클랜드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9대 7로 승리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