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개봉한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선 수퍼맨이 지구에 온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의 고향 크립톤 행성이 사라지는 모습이 나온다. 무분별한 자원 개발로 지층은 불안정해졌고 대규모 폭발과 함께 행성은 말 그대로 사라졌다. 당시 미국에선 셰일층을 수평 시추해 고압의 액체를 분사하는 ‘셰일 가스’ 개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던 때라 영화 속 크립톤 행성에 많은 사람이 주목했다.
그해 7월 영국 가디언지는 “지하에서 물을 퍼낼 경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땅속 깊은 곳을 파쇄해 물을 주입할 경우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지열발전소에서 지진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에밀리 브로드스키 교수는 “다량의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지열발전소나 파쇄 현장 근처에선 지진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다”며 “그러나 알려졌던 것보다 4 또는 5의 훨씬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위험은 지열발전소를 세우기 위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꼭 반영돼야 할 사항이라고도 했다.
지열발전소란 땅 속 지열을 이용해 발전기를 돌리는 것이다. 화산 근처에 짓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는 화산활동이 활발한 지역이 없어 포항의 경우 지하 4~5㎞까지 뚫어야 하는 심부지열발전(EGS) 방식을 선택했다. 지하 4㎞ 이상 깊이에 구멍을 뚫어 한쪽에 물을 주입해 뜨거운 지열로 데운 뒤 이때 발생하는 수증기를 다른 쪽 구멍으로 빼내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지반에 압력을 발생시키고 이를 배출해서 압력을 해소시키는데 이 같은 과정 중에 지반이 움직인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지열발전이 어느 정도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가디언이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보도한 데는 셰일가스 개발에 한창이던 미국의 지진 위험을 알리기 위해서 였다. 이유는 셰일가스의 수압파쇄법이 EGS 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수압파쇄법이란 지하의 셰일층까지 수직으로 시추공을 판 뒤 그 구멍에서 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가스가 빠져나간 뒤 지층 빈 공간이 물로 채워지면서 잦은 지진이 발생한다.
포항지진의 원인으로 일부 전문가들이 지열발전소를 꼽은 것도 셰일가스 채굴로 미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2006년 스위스 바젤에서 발생한 지진도 지열발전소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2009년 스위스 연방기관인 스위스지진서비스(Swiss Seismological Service) 소속 도메니코 지알디니 교수와 니콜라스 다이히만 교수가 ‘스위스 바젤 아래 강화된 지열시스템으로 유발된 지진(Earthquakes Induced by the Stimulation of an Enhanced Geothermal System below Basel Switzerland)'이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논문에서다.
바젤은 라인강과 유라 산맥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1356년 진도 6.5의 대지진이 발생한 뒤로는 안정적인 지대로 보고돼 왔다. 그러나 지열발전소가 가동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그해 12월 2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 동안 지하 5㎞까지 수직으로 뚫린 파이프를 통해 초당 50ℓ의 물을 흘려보내면서 발전을 진행했다. 이후 이 지역에서 지진의 발생 빈도가 크게 증가했다는 보고가 접수됐다.
논문은 1982년부터 2004년까지 규모 1 이상의 지진이 30여 차례 발생했지만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1년간 같은 지역에선 195회나 강한 지진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열 발전을 위해 지하에 투입한 대량의 물이 지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2006년 12월 8일 지하수가 투입되는 과정에서 지하 5㎞에 위치한 고온 저장소(우물)의 압력이 최대 29.6MPa까지 형성됐던 것으로 보고됐다. 이는 대기압으로 환산하면 약 300기압 정도의 고압이었다. 바젤의 사례는 이후 EGS 기술을 적용한 지열 발전소 설립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데 중요한 동기가 됐다.
해당 논문의 공동저자인 지알디니 취리히 공대 교수는 이번에 포항지진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정부조사연구단원으로도 참여했다.
다만 포항지진의 책임이 100% 지열발전소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민기복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바젤에서 2006년 지열발전을 추진하다 규모 2.6 지진이 발생하자 물 주입을 멈춘 뒤 5시간 만에 규모 3.4의 지진이 잇따랐다”면서 “이에 반해 포항은 물 주입이 끝난 지 두 달 만에 지진이 일어났고 이전에 이미 규모 3.1의 지진이 났었다”고 말했다.
‘유발지진’을 주장하고 있는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도 “10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부근에서 발생한 규모 7.5의 지진도 유발지진일 수 있다는 논문이 나오기도 했다”면서 “(지질발전소의 물 주입이) 마치 포항지진의 원인이라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해당 지역의 판들이 움직이며 쌓인 응력이 작용하고 있는 사이에 조금 더 건드려주는 방아쇠 구실을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적 모델이 최종 평결은 아니다. 다른 사실이 제기되면 수정하기도 하고 맞지 않으면 폐기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