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방문 당시 무려 4번이나 인사말을 실수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어가 아닌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하고,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인사말을 혼동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실무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20일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방문국 국민에게 친숙함을 표현하고자 현지어 인사말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3개국을 순방 중이던 지난 13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회견 시각에 맞춰 오후 인사에 해당하는 ‘슬라맛 소르(Selamat sore)’라는 현지어로 인사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말레이시아가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쓰는 오후 인사다. 말레이어의 오후 인사말은 ‘슬라맛 쁘땅(Selamat petang)’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쓴 ‘슬라맛 소르’라는 표현은 ‘슬라맛 소레’라는 인도네시아어 발음을 영어식으로 바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서 이경찬 영산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인도네시아어의 뿌리가 말레이어에 있으니 sore건, petang이건 무슨 상관이냐 한다면 외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며 “말레이어 통역이 있었다면, 최소한 제대로 된 대사관 직원 한 명이라도 기자회견문을 일별했다면 ‘Selamat petang’으로 바로 잡아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통령의 연설, 그것도 해외 국빈방문에서 대통령의 한마디는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청와대 비서실이건 외교부건 대통령의 기자회견문 모두 인사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책임은 작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 이외에도 말레이시아 국빈방문 기간에 3번이나 더 인사말 실수를 했다. 지난 12일 문 대통령은 현지시간 오후 3시30분에 열린 한류·할랄 전시회에서 ‘슬라맛 말람’이라는 저녁 인사를 했다. 또, 12일 오후 7시 동포 간담회와 다음 날 오후 8시에 열린 국빈만찬에서는 ‘슬라맛 쁘땅’이라는 오후 인사를 했다. 고 부대변인은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나가겠다”면서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크고 작은 외교 실수는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이어졌다. 청와대는 지난 15일 문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을 기념하는 포스팅에 캄보디아가 아닌 대만의 국가양청원(國家兩廳院) 사진을 올렸다. 국가양청원은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시에 있는 종합예술 문화시설이다. 지난해 11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문 대통령과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면담시간에 엇박자가 났고, 지난해 10월엔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한 문 대통령이 단체 사진 촬영을 못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당시 청와대 측은 회의장에 사람이 많아 붐볐고, 엘리베이터가 잡히지 않아 오래 기다리는 과정에서 기념촬영이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외교 실수들이 계속되면서 청와대 의전·부속 라인 책임론도 더 커질 전망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최근 3달가량 공석이었던 청와대 의전비서관에 박상훈 외교부 공공외교대사를 임명했다. 대통령 행사와 해외 순방을 총괄하는 의전비서관에 정치권 출신이 아닌 외교부 인사를 배치하는 것은 현 정부 들어 처음이었다.
박 비서관은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있었던 아세안 3개국 순방에 처음으로 투입됐다. 하지만 현지에서 외교적 실수가 발생하면서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청와대는 20일 탁현민 전 선임행정관 후임으로 홍희경 전 MBC C&I 부국장을 임명했다. 홍 선임행정관은 1992년 MBC C&I의 전신인 MBC 프로덕션에 입사해, 공연·전시·축제 등 이벤트 기획을 총괄해왔다. 대통령의 행사를 준비하는 탁 전 행정관과 비슷한 경력을 가졌지만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제1부속비서관실이나 말레이시아 통역 담당에 대해서도 연설문이나 인사말을 미리 체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지에서 대통령을 보좌한 장재복 외교부 의전장 등 외교라인의 꼼꼼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외교부 홀대론’도 커질 전망이다. 각 국가에 정통한 외교부 관계자를 순방 실무진에 전진배치해 사소한 실수를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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