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호 부장판사가 ‘김경수 재판’ 맡기 싫었다고 한 이유

입력 2019-03-20 07:12 수정 2019-03-20 09:59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1심에서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항소심 재판을 맡은 차문호 부장판사가 항소심 첫 재판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서울고법 형사 2부 차문호 부장판사는 19일 열린 김경수 지사의 항소심 첫 재판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고 향후 공정한 재판을 위해 부득이하게 말한다”고 운을 뗀 뒤 “어떤 예단도 갖지 않고 공정성을 전혀 잃지 않고 재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불공정 우려가 있으면 기피 신청을 해라”고 한 차 부장판사는 “국민께 송구한 마음과 사법 신뢰를 위해 이 재판을 맡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행법상 배당을 피할 수 없었다”는 솔직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이는 상고 법원 도입에 반대해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차성안 판사와 사촌지간이라는 이력이 알려지면서 공정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일각의 시선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차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07∼2008년 대법관이었을 때 전속재판연구관 중 한 명으로 근무했으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됐다. 차 부장판사는 양승태 사법부 법원행정처로부터 ‘차성안 판사를 회유하라’는 지시를 받고 실행에 옮겼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우리 재판부는 피고인과 옷깃도 스치지 않았다”고 한 차 부장판사는 “피고인으로서 우리 재판부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면 거부하거나 피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피고인이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재판부가 바뀌었을 것이고 그렇게 해주길 바랐지만 오늘까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피고인이 우리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한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차 부장판사는 “향후 재판과정에서 불공정 우려가 있으면 종결 전까지 얼마든지 기피 신청을 해라”고 재차 권유했다.

“나는 법관이기에 앞서 부족한 사람이라 하나하나에 상처받고 평정심을 잃기도 한다”고 한 차 부장판사는 “그러나 이 사건에서 어떤 예단도 갖지 않고 공정성을 잃지 않고 재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차 부장판사는 또 “항소심 접수 후 재판 시작도 전에 완전히 서로 다른 재판 결과가 당연시 예상되고 있다”며 “그런 결과는 재판부 경력 때문이라면서 재판부를 비난하고 벌써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을 해오는 과정에서 이런 관행은 경험해 보지 못했다”고 한 차 부장판사는 “법관은 눈을 가리고 법을 보는 정의의 여신처럼 재판 과정을 확인하고 정답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고독한 수도자의 불과하다. 재판 결과를 예단하고 비난하는 일각의 태도는 마치 경기 시작도 전에 승패를 예단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차 부장판사는 김경수 지사에 대한 보석 심문도 함께 진행했다. 재판부는 다음 달 11일 2차 공판까지 진행한 뒤 보석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