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65) 대구FC 대표이사는 국가대표 출신 행정가다. 이 이력이 그라운드와 프런트 사이를 끈끈하게 연결한다. 재정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시민구단에서 선수단의 고충과 프런트의 역할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조 대표가 없었으면 대구FC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광저우 헝다를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축구팬들의 평가가 과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조 대표가 감독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지 벌써 4년 6개월이 됐다. 대구FC 사장 취임 당시 조 대표의 행보를 놓고 많은 축구팬들은 아쉬워했다. 경남FC 감독 시절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별명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전술가의 면모를 다른 팀에서 보여주길 원했던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조 대표는 4년 반 동안 이런 생각을 뒤집었다. 행정가로 담대하게 걸으며 대구FC를 강호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프런트의 품격을 보여줬다.
조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인프라에 집중했다. 조 대표는 당시 “전용구장을 당장 건립하기 어려워도 훈련시설 보강과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클럽하우스 건립, 유소년축구센터 완공은 필수”라며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조 대표가 취임 직후 전용구장 건립을 발표했을 때 ‘6만석 이상의 월드컵경기장이 있는데 전용구장까지 지어야 하는가’를 놓고 의문이 많았다. 하지만 조 대표는 “똑같은 1만 관중이 와도 느낌이 다르다. 월드컵경기장의 접근성은 좋지 않다”며 전용구장 건립을 밀어붙였다.
뚝심이 통했을까. 올 시즌 K리그1 개막과 동시에 개장한 대구FC의 전용구장 ‘DGB대구은행파크’는 벌써 3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팬들의 반응은 조 대표의 예상대로였다. “선수들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할 수 있다” “꽉 찬 느낌이 든다” “시내에서 가까워 좋다”는 반응이 대체로 많았다.
유소년 축구센터는 2016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클럽하우스는 오는 4월 중으로 완공된다. 유소년 선수들에게는 축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 성인 선수들에게는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클럽하우스와 유소년 훈련센터의 위치는 전용구장 근처다. 조 대표가 계속 얘기했던 인프라는 ‘복합스포츠타운’으로 변모해 시민에게 다가가고 있다.
인프라는 결국 미래를 제시한다. 조 대표는 유소년 선수 육성에 집중했다. 취임 직후부터 1군 선수보다 유망주로 가득 찬 2군 선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조 대표에게 근황을 묻기 위해 19일 오후 3시쯤 전화를 걸었을 때도 그랬다. 그는 “R리그가 개막해 2군 경기를 보고 있다”며 2시간 뒤로 통화를 미뤘다. 시민구단은 예산이 없으니 선수를 키워야 한다는 철학을 부임 5년 차가 돼서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당시 영입한 대구FC의 왼쪽 윙 포워드 김대원(23)과 정승원(23) 등 젊은 선수들이 현재 주축이 돼 있다. 전북 현대전에서 주전으로 나왔던 대구FC 국내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26.7세였다. “3~4년 뒤에 유소년 선수들이 대구FC의 황금 세대를 열 것”이라는 조 대표의 4년 전 예측처럼 실력을 갖춘 젊은 선수들의 약진이 계속되고 있다.
시민구단의 구단주는 시장이다. 대구FC의 운영을 위해서는 권영진 대구시장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조 대표는 권 시장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조 대표는 프런트가 지원을 잘해야 선수들이 축구를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다. 권 시장은 축구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조 대표는 권 시장의 신임을 이끌어 낸다. 조 대표의 수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 대표는 권 시장을 설득해 전용구장 건설비 지원을 이끌어 냈고, 구단 예산을 2014년 약 70억 원에서 올해 160억 원으로 늘렸다. 약속한 시간에 전화를 받은 조 대표는 재정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시의 지원이 4년 전 약 55억원에서 84억원으로 늘었다. 광고수입과 네이밍 마케팅 수입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 사이 대구FC는 2부 챌린지 리그에서 1부 클래식 리그로 승격됐고, 2018년 대한축구협회(FA)컵 결승에서 울산을 꺾고 우승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팀 연봉 총액의 10배가 넘는 광저우를 이기는 이변도 연출했다.
선수가 모든 경기에 힘을 쏟고, 관중이 입장료를 지불해 그 땀방울의 가치를 인정하는 선순환이 계속되는 한 구단은 존속될 수 있다. 결국 행정가의 몫이다. 조 대표는 입장권 수익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축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2년 안에 무료 입장권을 없애 관중 수익을 내고, 클래식 리그 우승에도 도전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조광래가 없는 대구FC의 미래’까지 준비하고 있는 조 대표다.
박준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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