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주식거래 및 투자유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일명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3)씨 부모가 괴한들에게 살해된 가운데, 피의자가 숨진 모친 행세를 하며 시간을 번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강력계는 주범격인 피의자 김모(34)씨가 부부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달 25일 이후 그가 숨진 이씨의 어머니 행세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사건 현장인 부부의 자택에서 이씨의 어머니 휴대전화를 챙겨나온 뒤 메시지가 오면 자신이 답장을 했다. 하지만 이씨의 동생이 평소 자신의 어머니의 말투가 아닌 것을 수상하게 여겨 부모님의 집을 찾았으나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이씨의 동생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집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보냈다. 이 연락에도 김씨가 직접 답장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잘못된 비밀번호를 알려준 뒤 이씨의 동생과 연락을 끊었다. 이씨의 동생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가 한 달 가까이 범행을 계획한 정황도 확인됐다. 그는 지난달 초 ‘경호인력을 모집한다’는 구인공고를 올려 범행을 모의했다. 김씨를 제외한 공범은 총 3명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 동포로 범행 직후 중국으로 도주했다. 김씨는 한국에 남아 뒷수습을 했다.
18일 경기 안양동안경찰서에 따르면 이씨 부모는 지난 16~17일 각각 안양의 자택과 평택의 창고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16일 오후 4시쯤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씨 동생의 신고를 접수하고 오후 6시쯤 안양 자택 옷장에서 이씨의 어머니 시신을 발견했다. 이후 CCTV 분석을 통해 이튿날인 17일 오후 3시17분쯤 김씨를 체포했다. 그의 자백에 따라 이날 오후 4시쯤 평택 창고 냉장고 안에 보관된 이씨의 아버지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부부가 약 3주 전인 지난달 25일 자택에서 살해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씨는 오후 3시51분쯤 다른 용의자 3명과 함께 이씨 부모의 집에 들어갔다. 이들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부부는 집 안에 없었다. 부부는 약 15분 뒤인 오후 4시6분 자택으로 들어갔고 이 자리에서 살해됐다. 김씨를 제외한 용의자 3명은 오후 6시10분쯤 현장을 떠났고, 오후 11시51분 인천발 항공편으로 중국 칭다오로 출국했다.
김씨는 집 안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26일 오전 이삿짐센터를 이용해 이씨 아버지의 시신을 평택 창고로 운반했다. 시신은 냉장고에 담겨있었다. 전날 밤 10시쯤 뒷수습을 도와달라며 지인 2명을 불렀다가 20분쯤 뒤에 돌려보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이씨 아버지에게 투자 명목으로 2000만원을 빌려줬으나 받지 못했다”며 “이희진씨와 (이번 사건은) 무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의 주장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2000만원 때문에 미리 출국일정을 잡는 등 사전에 계획적으로 범행을 모의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다. 아울러 경찰은 일당이 이씨 부모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아낸 경위도 확인하고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