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발생 위험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미리 알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인 백혈병 환자 10명 가운데 1명 꼴로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가족 중 누군가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 다른 가족들도 유전자 검사를 받고 적절히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혈액종양내과 민유홍·정준원 교수와 진단검사의학과 최종락·이승태 교수팀은 백혈병 환자 분석 결과, 약 10%에서 출생 전 생식세포 시기에 발생해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유전자 돌연변이 종류인 ‘종자계 유전자 돌연변이’(germ line mutation)가 발견됐다고 18일 밝혔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흔히 동반되는 백혈병은 혈액을 만드는 골수내 조혈세포에서 생기는 대표적 혈액암으로, 최근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백혈병 환자는 2005년 2335명에서 2015년 3242명으로 10년 간 약 39% 늘었다. 현재 다양한 치료법과 약이 개발되고 있지만 치료가 쉽지 않아 전체 생존율은 40% 정도며 고령 백혈병 환자의 경우는 10%도 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백혈병 발생에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 겸 예후인자이기 때문에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게 종자계 유전자 돌연변이를 포함한 다양한 유전자 검사 시행을 권고하고 있다.
이런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유전자를 한번에 알아내는 검사법이 필요하다. 최근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GS)을 이용한 검사가 활성화되면서 유전자 검사의 유용성이 확대되고 있다.
연구팀은 2016~2017년 골수성 혈액암 진단을 받은 129명(백혈병 95명)을 대상으로 NGS를 활용해 유전자를 분석했다. 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다인 총 216개의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다. 여기에는 혈액암을 일으킬 수 있는 선천성 돌연변이 113개의 유전자도 포함돼 있다.
그 결과 골수성 혈액암 환자 10명 가운데 1명(8.4~11.6%)에서 판코니 빈혈, 선천성 재생불량성 빈혈, 가족성 혈소판 감소증 등의 원인이 되는 선천성 돌연변이(BRCA2, FANCA 등)가 확인됐다. 돌연변이 유전자는 3세에서 72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발견됐다.
이승태 교수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일부 유전자의 경우 유방암 등 다른 암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도 함께 발견돼 포괄적 유전자 검사를 바탕으로 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은 한 남성 환자(64)의 경우 첫째 딸이 5년 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가족력이 있어 NGS 검사를 실시한 결과 NBN 종자계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보인자로 판명됐다. 다른 가족들을 검사한 결과 첫 째 딸에서도 같은 돌연변이가 발견됐고, 아직 암 진단을 받지 않은 둘째 딸도 돌연변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에게서는 돌연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아들의 조혈모세포를 이용해 환자에게 이식했다. 환자는 현재까지 재발이 없는 상태다.
정준원 교수는 “그간 백혈병의 유전 경향을 중요하게 생각해오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한국인에서 유전성 소인을 가진 백혈병이 높은 것을 데이터로 확인했다”면서 “유전성 소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 중 혈액암 환자가 발생하고 종자계 유전자 돌연변이가 확인됐다면 백혈병을 포함한 다양한 암의 발병 위험을 확인하기 위해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하고 전문가의 포괄적 유전 상담과 체계적 암 검진, 예방을 위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환자 가족에 대한 NGS 검사는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받는 환자 자신에게도 돌연변이가 없는 가족 공여자를 찾아 재발의 위험을 줄일 수 있어 이식에서 매우 중요한 검사”라고 덧붙였다.
백혈병의 유전적 원인을 대규모 연구를 통해 국내 최초로 밝힌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3월호에 발표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