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여야 4당의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안건의 신속처리) 연대에서 소외된 자유한국당이 ‘좌파 연합 의회를 만들려는 음모’ ‘입법 쿠데타’ 등의 말 폭탄을 쏟아 부으며 보수층을 겨냥한 여론전에 나섰다. 특히 바른미래당 내 보수 세력을 자극해 ‘선거제 패스트트랙 연대’에 균열을 만들고 좌초시키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당은 18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좌파독재 저지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비상 연석회의’를 열고 대한민국의 좌경화를 경고했다. 당초 의원총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참석 대상을 원외 당협위원장까지 확대해 투쟁 수위를 높인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이 자리에서 여야 4당의 선거제 패스트트랙 연대에 대해 “좌파 독재정권 수명연장을 위한 입법 쿠데타”라며 “문재인정권이 정파적 이익에 급급한 소수 야당들과 야합해 다음 총선에서 좌파 연합 의회를 만들려는 음모”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좌파 소수 야당들은 정권을 견제하기는커녕 애국 우파의 마지막 보루인 한국당을 없애겠다는 정권과 야합해 홍위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지금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그대로 존속하느냐, 좌파 독재 지배의 길로 가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나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 15일 비상 의원총회에서도 “바른미래당의 양심 있는 의원들의 양심을 믿는다. 그들에게 패스트트랙에 참여하지 말아달라고 박수 한 번 보내시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적극적인 이념 갈라치기를 통해 정치권의 보수층을 결집하고 보수 연대 대(對) 진보 연대 구도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보수 주도권 다툼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실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가 본격화되면서 바른미래당 내 노선 투쟁도 가열되고 있다. 바른미래당 내 구(舊)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여야 4당의 연대로 인해 한국당 대(對) 민주당 연대라는 구도가 굳어지는 상황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민주당 연대로 묶일 경우 보수 지지층에 외면 받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도 감지된다.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에 “야당으로서 민주당과 정부를 공격해 선명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인데 왜 자꾸 한국당과 각을 세워 대립 구도를 만드느냐”는 의견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정당 출신인 오신환 사무총장은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의원들이 당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 경우 탈당을 감행하겠다는 의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출신 원외 지역위원장들도 이날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의 패스트트랙 논의는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한다”며 “민주당이 시도하는 권력기관 장악 작업의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준석 최고위원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와 당이 명운을 걸고 밀어붙이는 선거법 개혁이 무리한 추진으로 또 다른 당내 불안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대표의 속내는 복잡하다. 그는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 의원들과 위원장들이 모두 한마음이 아닌 것을 인정한다”며 “탈당 얘기가 나오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 극복하고 의견을 모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여야 4당의 선거제 합의안에 대해서는 “완전한 연동형도 아니고 50%짜리, 여야 합의도 아니고 패스트트랙 상정이다. 궁색하기 짝이 없다”면서도 “그나마 패스트트랙을 걸지 않으면 그간 무르익은 선거제 개혁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