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임금격차?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데요, 어리석은 겁니다. 문이 닫힙니다.”
독일 베를린 지하철 출입구에 붙은 문구다. 18일(현지시간) 하루동안 여성은 21% 할인된 운임으로 베를린 전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독일 여성의 평균 수입이 남성보다 21% 적다는 점에 착안한 할인율이다. 여성이 차별받는 비율만큼 지하철 운임을 할인해주겠다는 취지다.
베를린교통공사(BVG)는 남녀임금에 차등을 두는 ‘어리석은’ 사회현상을 꼬집기 위해 이 같은 이벤트를 마련했다고 13일 밝혔다.
행사 날짜를 3월 18일로 정한 이유는 ‘21’이라는 숫자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일년의 21%는 약 77일에 해당한다. 독일 여성이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77일 더 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3월 18일은 새해로부터 77일째 되는 날이다. BVG는 이날을 ‘Equal Pay day(같은 돈을 내는 날)’로 명명했다.
이날 베를린 전 지역 지하철역사 내 티켓 자동판매기에서는 여성전용티켓(Frauenticket)을 발권한다. 오전 0시부터 19일 새벽 3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베를린 대중교통 1일권은 7유로(약 8900원)지만 여성은 21% 할인된 5.5유로(약 7000원)에 탑승할 수 있다.
BVG는 기획 취지를 밝히면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자신들의 성 평등 정책을 강조하기도 했다. BVG는 2003년부터 여성 친화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육아를 위해 탄력적 근무시간을 운용했고, 육아휴직을 마친 여성에게 정규직을 보장했다. 남녀에게 동등한 임금을 지급했고, 기술직·관리직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승진 기회를 줬다. 아울러 2022년까지 여성 비율을 27%로 늘릴 방침이다. 현재는 20%다.
일각에서 ‘남성을 차별하는 행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BVG는 “행사 목표는 임금격차 등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며 “남성이 차별받는다고 느낀다면 사과하겠지만 평균 임금을 21% 적게 받는 여성들에겐 누가 사과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베를린 남성 대다수는 이 행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지지할 것으로 본다”며 “이 작은 이벤트는 여성이 해마다 소득을 박탈당하는 것에 비하면 큰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불평등 해소보다 단순 강조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일한 인간이 아무 이유 없이 다르게 대우를 받는다면 누구라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며 “이 경우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불공정함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적으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며 “우리는 평등과 관용과 인간을 위한 독일의 교통 공사”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경우 2016년 기준 남녀임금격차는 36.7%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