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골키퍼 헤일러 나바스도 다시금 기회를 받을 수 있을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함께 했던 지네딘 지단 감독이 복귀했다. 레알은 지난 12일 산티아고 솔라리 감독을 경질한 후 지단 감독을 다시 공식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전임 감독 솔라리는 과도기를 겪는 와중에 레알 유소년팀과 B팀 격인 카스티야를 오랜 시간 지휘해온 경험을 살렸다. 많은 백업 선수들과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를 비롯해 세르히오 레길론, 마르코스 요렌테, 다니 세바요스, 헤수스 바예호, 페데리코 발베르데, 하비 산체스 등이 솔라리 체제에서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있었다. 이스코와 마르코 아센시오가 대표적이다. 전임 감독인 지네딘 지단과 훌렌 로페테기 체제에서 주역으로 활동했으나 솔라리 부임 이후 완전히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입지가 불안정해진 이들을 중심으로 이적설이 끊이질 않았다.
나바스도 그랬다. 솔라리 체제에서 자리를 잃은 선수 중 하나다. 그는 지단 감독의 첫 번째 골키퍼로 활약하며 챔피언스리그 3연패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뛰어난 반사 신경과 동물적인 선방능력 덕에 레알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종종 보이는 불안정한 모습 탓에 구단은 나바스를 신뢰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여름 첼시에서 티보 쿠르투아를 데려왔고, 자연스레 기존에 자리를 지켰던 나바스의 입지는 대폭 줄어들었다.
로페테기 감독은 그래도 나바스를 활용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골키퍼 두 명을 두고 경쟁이 아닌 대회 이원화 체제를 택했다. 나바스가 챔피언스리그와 컵 대회 일정을 소화하면 쿠르투아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만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나바스에게도 충분히 활약할 기회를 줬다. 챔피언스리그 3연패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골키퍼를 향한 대우였다.
솔라리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대회를 가리지 않고 쿠르투아를 첫 번째 골키퍼로 기용했다. 나바스가 리그에서 제대로 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때는 지난 1월 쿠르투아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잠시 이탈했던 때 정도였다.
지단 감독은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첫 복귀전에서 나바스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나바스는 이에 보답했다.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마쳤다. 레알은 17일 홈에서 열린 2018-2019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28라운드에서 셀타 비고를 2대 0으로 제압했다. 최근 안방에서 4경기 연속 승리를 챙기지 못하며 자존심을 구겼으나 모처럼 승리를 맛봤다.
레알이 일방적으로 경기를 주도하며 특별한 선방 장면은 없었지만 나바스가 오랜만에 선발로 나선 것에 대한 의미는 특별했다. 본격적인 골키퍼 지각 변동을 예고한 것이다.
지단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나바스의 활약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나바스는 정말 훌륭하다. 그래서 오늘 투입했다. 쿠르투아도 경기에 나설 것이다. 지금까지 잘해왔다. 루카 지단도 있다. 3명 모두 좋은 골키퍼”라면서 본격적인 경쟁 체제를 예고했다. 이어 “레알은 두세 명의 골키퍼가 필요하다. 그 중심에는 골키퍼 코치가 있다. 나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그들을 믿을 것이다. 시즌은 길고 최소 2명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3500만 유로(약 455억원)의 이적료를 투자한 만큼 여전히 쿠르투아가 중책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나바스에게는 지단의 복귀가 희망적인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철저히 백업 요원에 그쳤던 설움을 털어낼 기회가 찾아왔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