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미 상태인 브렉시트, 일단 연기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안갯속

입력 2019-03-16 04:00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4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장관들과 함께 하원의 투표를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영국 하원이 오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점을 연기하기로 14일(현지시간) 결정했다.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기 위해서는 브렉시트를 미루는 것이 낫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기운 것이다.

브렉시트 연기 기한은 오는 20일 치러지는 영국 하원의 세 번째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 투표에 따라 3개월에서 1년 이상 늘어날 수 있다. 하원이 오는 20일을 최종시한으로 정한 뒤 그때까지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브렉시트 시점을 6월 30일까지, 통과하지 못하면 이보다 오래 연기한다는 내용의 정부안을 찬성 412표 대 반대 202표로 가결했기 때문이다. 하원은 브렉시트 합의안 가결과 상관없이 일단 브렉시트 시점을 연기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다만 이날 하원은 브렉시트 연기 후 제2 국민투표를 치르자는 안은 반대했다.

브렉시트 연기 기한은 하원이 20일 브렉시트 합의안을 통과시키느냐에 달려있다. 하원이 합의안을 부결할 경우 연기 기한은 2020년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브렉시트 합의안은 앞서 두 번의 표결에서도 부결됐다.

부결의 원인은 1차와 2차 모두 합의안 가운데 ‘안전장치(backstop)’ 조항 때문이다. 안전장치는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이 북아일랜드 사이에 ‘하드보더’(국경 통과 시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를 피하기 위한 장치를 의미한다. 영국 정부와 EU는 혼란을 막고자 당분간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남기는 내용의 안전장치 조항에 합의했다. 이에 대해 보수당의 브렉시트 강경파는 안전장치 종료 시점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영국이 영원히 EU 관세동맹 안에 갇힐 수 있다고 반발해 왔다.

1차 합의안 투표가 부결된 이후 메이 총리는 EU와의 재협상을 통해 영국에 ‘안전장치’ 일방적 종료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을 넣었다. 그러나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상이 이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한 결과 “국제법상 안전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 없다”고 주장해 2차 합의안 투표도 부결됐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연기가 장기화되면 브렉시트 취소론이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며 보수당 내 강경파와 보수당과 사실상 연정을 구성하는 민주연합당(DUP) 등에게 압박을 넣고 있다. 브렉시트 강경파의 경우 노딜 브렉시트를 감수하더라도 하루 속히 EU를 떠나자는 입장인 만큼 3차 투표에서 마음을 바꿔 합의안을 지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런데 승인투표가 가결되든 부결되는 브렉시트 연기에 대한 최종 결정은 EU의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가능하다. 어떤 경우라도 EU가 승인하지 않으면 영국은 29일 노딜 브렉시트 사태를 맞게 된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대체로 EU가 브렉시트 연기를 승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만이 아니라 EU에도 불리하기 때문이다. 또 EU 회원국들 가운데 어느 나라도 영국으로부터 브렉시트 후유증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반대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결돼 브렉시트 기한이 7월 이후로 연기되면 5월말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 영국도 참여해야 하는 문제와 관련해 EU 회원국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EU는 오는 21~22일 이틀간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연기에 대한 의견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