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처음 대면한 MB와 원세훈, “자금 지원 요청 없었다”

입력 2019-03-15 17:01 수정 2019-03-15 17:10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5일 법정에서 처음으로 대면했다. 항소심 첫 증인으로 출석한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정원 자금 지원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며 이 전 대통령을 감쌌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 속행 공판에서 약 1시간30분간 원 전 원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 등 구속 상태에서 여러 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원 전 원장은 수의 대신 검은색 정장을 입고 출석했다. 증인석에 선 원 전 원장이 피고인석의 이 전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이 전 대통령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6월과 2011년 9~10월 원 전 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활비 2억원과 현금 10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원 전 원장도 이 사건으로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특활비 2억원에 대해서 뇌물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국고손실 혐의만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10만 달러는 국정원장 유지를 위한 명목 등 대가성이 인정된다며 뇌물이라고 봤다.

이날 이 전 대통령 변호인인 강훈 변호사가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의 진술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기념품 제작 등에 필요한 청와대 예산이 부족하니 국정원에서 도와달라 했고, 국정원장직 유지를 위해 2억원을 제공했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원 전 원장은 “이미 국정원장을 그만두려고 생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뇌물을 주고 그런 게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강 변호사가 “국정원에서 2억원을 청와대에 전달하도록 한 것은 대통령 지시로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냐”고 묻자 그는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하겠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기념품 제작 비용이든 보훈단체 지원금이든 당시 대통령이 직접 지원 요청한 적이 있느냐”는 강 변호사 물음에 원 전 원장은 “없다”고 답했다. 그는 “김 전 기획관과 실무진 사이에 이야기가 오고 간 것 같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다만 현금 10만 달러를 전달한 사실은 인정했다. 검찰이 “2011년 9~10월 해외 순방을 앞둔 대통령에게 국정원 예산관을 통해 10만 달러를 전달한 사실이 기억나느냐”고 묻자 원 전 원장은 “한 번 정도 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북 접촉 활동 명목으로 준 것이지 뇌물이 아니다”며 대가성을 부인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