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연일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자,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중단을 경고하고 반발했다.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대화 가능성을 언급해오던 북·미 관계는 다시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최근 ‘북핵 빅딜’을 주장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15일(현지시간) 평양에서 외신기자 등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황금 같은 절호의 기회를 날렸다”면서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지속할지, 그리고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중단을 유지할지 등을 곧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앞으로의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표 시기와 방식 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갑작스럽게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 부상은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이 부결된 직후 열렸던 기자회견보다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았다. 그는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중단 등 우리가 지난 15개월간 취한 조치에 대해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고 ‘정치적 계산’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타협이나 협상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보인 (협상) 태도에 혼란스러워했다”면서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좀 더 대화하고 싶어 했지만, 미국의 입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의 비타협적 요구 쪽으로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에도 ‘깜짝’ 기자회견을 열었던 북한이 이번에도 ‘깜짝’ 기자회견을 통해 ‘대북 제재와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셈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14일(현지시간)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강조하며 한국 정부의 이탈을 막고 국제사회에서의 대북 비핵화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서 군사력을 이용한 대북 압박도 병행할 뜻을 드러냈었다.
최 부상은 ‘북한이 모든 제재를 해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리는 민간 경제에 적용된 제재만을 해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며 회담 결렬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고 다시 한번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이번에 미국이 우리와 매우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 부상은 또 “하노이 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김 위원장은 ‘왜 이런 열차여행을 또 해야 하지?’라고 말했다”면서 “분명 깡패 같은 미국의 태도가 상황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어떤 형태로든 미국과 타협할 생각이 없으며 이런 식의 협상을 할 계획이나 바람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판을 깰 수도 있다’는 강경 입장은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 전술이자,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대응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다만 최 부상은 “(북·미의) 두 최고 지도자 간의 관계는 여전히 좋고, 합도 잘 맞다”면서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최 부상은 이날 북한이 또 다른 미사일 발사나 위성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최근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계속 중단할지는 전적으로 김 위원장에게 달려있다”며 “짧은 시일 내에 (그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