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외면하는 따릉이… 공공정책마저 디지털 소외 현상

입력 2019-03-14 07:00
인기 유튜버인 박막례 할머니는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 편에서 디지털 소외를 겪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할머니는 맥도날드 무인자판기 앞에서 처음부터 당황한다. 손녀는 “여기 쓰여 있는 대로 해봐”라며 할머니가 직접 무인자판기를 이용하게 한다. 하지만 박막례 할머니는 작은 글씨와 그림 때문에 커피를 콜라로 착각해 주문하고, 먹고 싶었던 불고기 버거 세트를 찾는 데도 오랫동안 시간을 쓴다. 영상 막바지에 할머니는 “저기서 음식을 먹으려면 영어공부를 해야 하고, 돋보기가 있어야 하고, 카드도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박막례 할머니의 모습을 따릉이를 이용하려는 노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따릉이는 시행된 지 약 3년 반 만에 2018년 8월 기준 누적 회원 수 109만 명을 돌파했고, 전체 이용 건수 1600만 건을 훌쩍 넘겼다. 지난해 12월 16일 서울시는 온·오프라인으로 ‘내 삶을 바꾼 2018 서울시 10대 뉴스’ 시민 투표를 한 결과 “따릉이가 1만8676표(6.5%)를 받아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8년 기준 서울시의 고령 인구는 약 137만 명으로 인구 전체 대비 14.44%다. 하지만 정작 60대 이상 노인들은 따릉이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서울열린데이터광장에 게재된 공공자전거 월별 신규가입자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따릉이 신규회원가입자 37만 8597명 중 60대와 70대 이상은 5638명이었다. 전체에서 1.4%에 불과했다.

2018년 노인들의 따릉이 신규회원 가입률은 더 낮아졌다. 따릉이 신규가입자 54만 8617명에서 60대와 70대 이상은 5794명이었다. 전체에서 1%도 안 되는 수치다. 반면 20대와 30대를 합한 2018년 따릉이 이용률은 75.4%였다. “노약자도 편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면 뭐하나. 쓰지도 못하는데”라는 비판이 뒤따르는 이유다.

따릉이 비회원 결제화면

어려운 대여 시스템이 노인들이 따릉이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따릉이를 대여할 수 있는 오프라인 창구가 없다. 인터넷이든 스마트폰 앱이든 따릉이를 이용하려면 온라인상에서 이용권을 결제한 후 자전거를 대여해야 한다. 노인들에겐 회원 가입도 어렵다. 회원가입을 포기하고 비회원으로 대여를 시도하면, 결제 과정이 어려워 대여까지 이르는 경우가 드물다.

노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은 설명문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는 각 대여소에 따릉이 대여 방법을 담은 표지판을 세워두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설명이 줄글로 적혀 있어 디지털에 대한 노인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기엔 부족하다. 스마트폰 사용도 어려운데, 설명까지 불친절하니 따릉이를 한 번 타보려 해도 노인들은 자괴감만 느끼고 뒤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인이 따릉이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통계는 노년층이 겪고 있는 디지털 소외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해야 할 공공재마저 디지털 소외가 발생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따릉이의 구매부터 운영까지 모두 서울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도 노인들은 자유롭게 따릉이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따릉이 한 대 구매비용이 80만 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노인들은 납부한 세금을 효과적으로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뉴시스

서울시는 사기업의 플랫폼 개선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은행권의 고령자 맞춤형 앱이 좋은 예시다. KB국민은행의 ‘골든라이프뱅킹’은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계좌 조회나 이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글씨를 크게 만들거나 조작이 쉽도록 화면을 구성돼있다. 신한은행의 모바일 통합 플랫폼 ‘쏠(SOL)’, KEB하나은행 ‘1Q뱅크’, 우리은행 ‘원터치개인뱅킹’, IBK기업은행의 ‘큰글씨뱅킹’ 등도 유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준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