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폭로로 의혹이 제기된 청와대의 업무추진비(업추비) 집행이 적절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심 의원 폭로의 핵심 쟁점이었던 청와대 직원들의 업추비 심야·휴일 사용 등에 대해 문제없다는 결론이다. 일각에선 감사원이 청와대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감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업무추진비 집행실태 점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대통령비서실, 기획재정부 등 11개 기관을 대상으로 업무추진비 집행실태 점검 감사를 실시했다. 해당 감사는 심 의원과 보좌진이 한국재정정보원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에 접속, 청와대 등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입수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심 의원 폭로와 언론의 지적이 이어지자 기재부가 지난해 10월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공익감사청구자문위원회 등을 거친 후 대통령비서실, 기재부 등 11개 기관에 대해 우선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은 11개 감사 대상 기관이 2017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사용한 업추비를 들여다봤다. 심야·휴일 사용 등 1만9676건을 점검한 결과, 1764건이 적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징계 4건·주의요구 29건 등 총 36건의 감사결과를 통보했다.
이번 감사에서 감사원은 심 의원이 집중 지적한 사용 시간대와 업종의 적정성에 대해 문제없다는 결론을 냈다. 청와대는 감사 대상 기간 동안 주점 81건, 오락 54건, 백화점 698건, 50만원을 초과한 고급 일식점 43건, 심야·휴일 2461건의 업추비를 집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청와대 직원들의 심야·휴일 업무추진비 사용은 허위 증빙이나 사적 사용 등의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집행목적·일시·대상 등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심야·휴일 사용의 불가피성도 점검했다. 또 대통령비서실이 주점에서 사용한 업추비의 경우 ‘예산집행지침’상 집행이 허용되는 업종에서 사용됐다. 81건 모두 업추비 집행이 금지된 단란·유흥주점이 아닌 기타주점 등 사용할 수 있는 업종에서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급일식점에서 50만원 이상 업추비가 집행된 43건에 대해 감사원은 사용 건당 상한액에 대한 지침이 없고, 증빙서류도 구비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금액 상한 설정에 대해서는 대외적으로 외부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청와대 업무 특성상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부연했다.
대통령비서실과 함께 업추비 의혹이 제기된 기재부, 대통령경호처 등도 감사 결과 업추비 집행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다만 감사원이 이번에 낸 36건의 감사결과 중 대통령비서실은 주의 2건·통보 1건을, 대통령경호처는 주의를 1건 받았다.
대통령비서실은 직원 및 방문객을 위한 냉온수기 투입용 식수 구입비 869만5000원을 전용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업무추진비 예산으로 집행한 것으로 확인돼 주의를 받았다.
대통령경호처는 ‘평창동계올림픽 D-200 행사’ 준비를 위한 출장에 업추비를 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 22명의 숙박비 등으로 136만6000원을 전용 절차 거치지 않고 집행했다. 대통령경호처는 이에 대해 주의를 받았다.
일각에선 감사원이 청와대의 업추비 사용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권력 핵심 기관에 대한 봐주기식 감사”라며 “이번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의 업무추진비 부당사용 실태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대통령비서실 등 4개 기관이 업무추진비 2701만여원을 전용절차 없이 예산편성 목적 외 경비로 사용했다’고 지적하는데 그쳤다”며 “청와대와 기재부의 주말·심야 시간대 사용, 술집 등에서의 과다한 사용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업추비를 이용, 상품권을 구입한 후 사적으로 이용한 공무원들이 적발됐다.
행정안전부 소속 A씨는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 사이에 커피숍 상품권을 업무추진비로 구입한 후 292만원을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 또 같은 부처 소속 B씨도 상품권을 구입, 109만원을 사적 용도로 썼다. 국무총리 비서실 소속 C씨도 상품권을 국회 지원 명목으로 받았으나 117만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행정안전부 소속 국장 D씨는 지인과의 음주로 단란주점에 업추비 25만원을 사적으로 쓴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는 이번 감사결과를 토대로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등 제도개선에 힘쓸 계획이다. 심야·휴일 사용의 구체적 증빙서류 작성 기준을 마련했고,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의 경우 지급대장에 지급일시와 지급대상자를 반드시 기재해 관리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