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중구 사우나 화재 당시 이 건물 주민 이재만(66)씨가 현장에서 끝까지 사람들을 대피시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의 헌신으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용감한 시민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13일 대구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이씨는 사고 당일인 지난달 19일 오전 6시쯤 자신이 사는 건물 4층에 있는 목욕탕에 들렀다. 샤워를 하고 남탕 탈의실에서 평소 알고 지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씨는 오전 7시쯤 타는 냄새를 맡았고 남탕 입구 문을 열고 급하게 뛰어들어오는 목욕탕 업주 뒤로 시커먼 연기와 불길을 봤다.
위험을 느낀 이씨는 곧바로 휴게실로 향했고 자고 있던 손님 10여명을 깨웠다. 이어 헬스장으로 뛰어가 화재 사실을 알린 뒤 목욕탕 안으로 다시 들어가 탕 안에 있던 손님들까지 대피시켰다.
하지만 목욕탕 안을 확인하고 나오려는 순간 입구 천장이 무너졌고 이씨와 다른 손님 1명이 목욕탕 안에 갇혔다. 화재로 인한 연기에 전기 공급까지 끊겨 목욕탕 내부는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됐다. 이씨는 타올에 물을 묻혀 얼굴을 감싸고 버티다 다시 상황을 살폈고 불길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탈의실 쪽으로 나와 남탕 입구로 겨우 대피했다. 당시 함께 있던 손님 1명은 창문으로 뛰어내리다가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30분쯤 화재 진화가 끝났고 이씨가 건물 1층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온 시간은 오전 7시33분이었다. 이씨는 화재 진압이 끝날 때까지 사우나에서 주민들을 도운 것이다.
이씨는 “사우나 안에 갇혔을 때 이대로 죽는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며 “비슷한 상황이 발생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