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에도 봄은 올까. 지난달 29일 화순시 탄광촌이었던 동암마을 인근의 한 밭에 핀 봄꽃 위로 산화한 연탄이 버려져 있다. 읍내에도 없던 극장과 병원이 들어섰던 탄광촌의 영광은 이제 찾아보기 힘든 옛이야기가 되었다.
‘탁탁탁’ 마른가지 한데 모아 연탄에 불을 붙인다. ‘치직치직’ 마찰음 소리와 함께 연탄구멍 사이로 불길이 치솟는다. 시뻘건 연탄의 타는 냄새가 퍼지고 온기가 마을을 감싼다. 너도나도 연탄을 재워놓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 활활 타오르던 연탄의 불길이 꺼져 간다.
빛 한줌 없는 지하 600m 갱도 안. 헤드램프에 비치는 것은 흩날리는 석탄 가루뿐이다. 갱도 안은 30도를 웃돌아 땀으로 흥건한 얼굴엔 석탄재가 달라붙는다. 선명히 보이는 것은 오로지 눈의 흰자위뿐. 무지막지한 막노동의 현장, ‘막장’이다. 지난달 28일 임용귀씨가 석탄 채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양 산업이 되어버린 석탄 산업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요. 산업전사로 역경의 세월을 보낸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1, 2년 뒤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채굴장으로 이동하는 임용귀씨가 지금은 퇴직한 선배 광부에게 자주 들었던 말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여, 태양을 머리에 하나씩 이고 일을 하는 사람들잉께"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에서 ‘케빙’ 작업을 하는 임용귀(45)씨는 2대째 광부 일을 이어오고 있다. 케빙 작업은 ‘막장’ 안에서도 최전선에서 발파와 채굴을 담당하는 업무로 가장 위험한 일에 속한다. 몇 년 전부터 구조조정과 폐광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이지만 신규 채용이 없어 막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케빙 작업은 발파와 채굴을 담당하는 업무로 한 순간의 방심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채굴하는 임씨의 눈에 긴장감이 엿보인다.
석탄은 액화천연가스(LNG)와 유류시장의 확대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9년 한해에 70만t을 생산했던 화순광업소는 올해 생산계획 기준 10만t으로 7배가 줄어들었다. 줄어든 생산량만큼 직원 수도 현저히 줄어 700명에 달했던 채굴 근로자는 현재 55명만이 남았다. 1700명까지 달했던 총 직원 수는 직주근로자 160명과 외주근로자 220여명을 합해 380여명으로 줄었다. 광업소 앞 즐비했던 상점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화순광업소 관계자가 지난달 28일 하루에 무연탄 4만t을 수송하며 화순광업소 성황의 상징이었던 전남 화순 복암역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은 대한석탄공사 전용선인 화순선의 종착역으로 화순광업소에서 서쪽으로 1km 채 떨어지지 않았다. 성업의 상징이었지만 결국 폐역이 된 복암역을 바라보는 그에게서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탄광촌은 이마저도 유지가 어려운 실정에 놓여 있다. 석탄을 캐는 비용보다 수입해서 쓰는 것이 훨씬 저렴한 탓에 수입 비중이 크게 오르고 있어서다.
광부 김용승씨가 절반 근무를 마친 뒤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하얀 양배추가 김씨의 시커먼 얼굴과 대비된다. 광부들은 간단하게 도시락을 싸온다. 고된 노역인 탓에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없고 한번 갱으로 출근하면 퇴근까지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지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기본 40분 이상을 소요하는 탓이다. 용변 또한 갱안에 흐르는 지하수에 흘려보낸다. 식사를 마치고 새 옷을 갈아입는 그가 웃으며 외쳤다. “이제 후반전 갑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광업소의 근로자들 또한 이해하고 있다. 한때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산업영웅이었으나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광부들은 생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퇴근하는 광부들.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친 광부들이 광업소 직원 전용 목욕탕에서 석탄재를 씻어내고 있다. 화순광업소 광부들은 주야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주간팀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야간팀은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다. 그 날의 노역만큼 시커먼 물이 하수구를 따라 흐른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에서도 임씨는 웃으며 말한다. “제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회사가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자식을 배불리 먹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보람 아니겠습니까.”
화순광업소의 귀염둥이 막내들인 임용귀씨와 김용승씨가 휴식을 취하던 중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있다. 그들은 광업소에서 일한 시간보다 정년(60세)까지 일할 시간이 더 많이 남은 젊은 일꾼들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은 “막장에서 일하고 있으믄 이마고 어디고 땀이 안나는 곳이 없시야, 장화에도 땀이 흥건해가꼬 뒤집으믄 물이 몽신 흘러븐당게, 그래도 난 내 삶의 터전인 막장이 좋아브러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