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이현우(29)씨는 올해 바이올린으로 백석예대 음악학부 클래식과에 들어갔다. 그는 23세에 한 복지관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현우씨가 악기를 다룰 수 있을까 싶었다. 그는 단 5분도 가만있질 못했다.
그런데 바이올린을 든 현우씨는 그렇지 않았다. 남들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가르쳐주니까 켤 줄도 알았다. 이씨 엄마는 “얘가 이걸 할 수 있네. 악보도 볼 줄 아네”라며 놀랐다. 공연할 때도 무대에 올라 연주에 집중했다. 이 씨 엄마는 말했다. “무대에서 저를 보고 씩 웃는데, 애가 무대 체질인가? 어머, 이거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냈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국장협)의 장애인문화예술학교를 알게 됐다. “이곳에는 오케스트라가 있는 거예요. 장애가 있으니까 음악을 취미 삼아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잘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있는 거예요.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왜 진작 몰랐을까 싶더라고요.”
국장협 장애인문화예술학교에는 백석예술대 음악학부 일반전형에 당당히 합격한 김유경씨도 있었다. 이씨 엄마는 현우도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우가 장애인사업장을 다녔는데, 앞으로 이력서 쓸 때 ‘대학 졸업’이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아이 가르치는 게 끝이 없구나. 우리 비장애인도 배우는 건 끝이 없다고 하는데 마찬가지구나 싶었어요.”
이씨도 이런저런 치료는 다 해봤다. 일반 초등학교를 보냈을 때 주변에서는 왜 특수학교에 안 보내냐고 했다. “그때만 해도 발달장애인을 힘들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던 시기였어요. 벌써 뇌가 다 굳어서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이씨는 가르치면 가르치는 것을 습득했다. 이씨를 가르친 선생님은 모두 ‘얘는 더 가르쳐보세요’라고 했다. 그만 가르치라고 한 선생님은 없었다. “애가 발전하는 게 눈에 보여요. 발전이 없으면 우리도 지칠 텐데, 애가 달라지니까 계속 가르치게 돼요. 첫날 다르고 둘째 날 달라요. 일반인도 처음 어디를 가면 당황하잖아요. 이 아이들은 적응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뿐이에요.”
이씨 엄마는 금방 좋아지진 않지만 포기는 안 한다고 강조했다. “내 아이 내가 포기하면 남들은요…. 부모가 포기하면 끝이잖아요. 인생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냥 못한다고 하지 않는 아이에게 너무 고맙고요.”
최근 방문한 인천 부평구에 있는 국장협 장애인문화예술학교. 그곳에는 이씨를 비롯해 발달장애인 12명이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는 14~30세 정단원 21명, 예비단원 5명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향상음악회’라고 소규모 발표회도 하고 정기연주회도 한다. 겨울 캠프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크게 달라진다고 동행한 최공열 국장협 이사장이 설명했다.
이곳에서 만난 플로리스트 신새벽(30)씨도 그랬다. 그는 사회적 지능이 4세 정도다. 2011년 가을부터 이곳을 다니고 있다. 인천시 강화에서 한 시간 반 걸려 온다. 신씨 아버지는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게 감사하다. 모두 발달장애아여서 서로 눈치 볼 일도, 부모들끼리는 서로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점은 신씨가 꿈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신씨 아버지는 “유경이가 대학 간 것을 보고 우리 애도 열심히 연주하게 됐다”고 했다. 신씨 아버지는 “음악은 고도의 두뇌 행위인 것 같다. 음악을 하면서 지력이 늘었다. 저로서 보면 우리 애가 굉장히 똑똑해졌다. 표현력이 늘고 적응력도 좋아졌다. 돌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건원(19)씨는 이번에 백석예대 음악학부 클래식과에 들어갔다. 2015년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 이듬해부터 이곳에 다녔다. 이씨는 지능이 5세 정도다. 이씨는 경기도 부천시 소사에서 지하철로 두 번 갈아타고 온다.
이씨 어머니는 “여기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사회성 공동체성을 배운다. 형 동생이라는 것을 구분하고 어른도 구분할 줄 알게 됐다”고 했다. 또 “악기를 불 줄 알고 악상을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게 놀랍다”며 “그거 이상으로 악기에 감정을 실어내는 정도는 안 되고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문화예술학교는 국장협이 2001년 광명시에 처음 만들었다. 발달 장애아들을 문화예술로 치유하고 더 나아가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현재 전국 각지에 있다. 서울하고 부평은 중앙에서 직접 관리하고 나머지는 지역별로 운영한다. 음악 미술을 교육한다.
대표적인 성과가 김유경씨다. 김씨는 4년제 백석 예대를 졸업했다. 장애의 정도가 심했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크게 달라졌다. 이번에는 이 학교에서 백석예대에 2명, 숭실콘서바토리에 2명이 입학했다.
국장협의 요즘 고민은 이렇게 졸업한 아이들을 어디에 취업시킬 것이다. 음악으로 대학까지 나왔는데 다시 장애인사업장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사회적 기업 형태의 예술단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다.
최공열 이사장은 “처음에는 발달장애아가 대학에 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꿈꾸니까 김씨가 대학에 갔고 이를 보고 또 꿈을 꾸니까 발달장애가 대학 가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됐다”면서 “이제는 그 이후를 준비하고 꿈을 꾼다. 이들이 음대를 졸업하면 음악을 통해 직업을 갖도록 예술단 설립을 도와달라. 한국교회가 나서 달라”고 말했다. 글·사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