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미제로 남아있던 강원도 작은 마을 우물 속 시신에 대한 수사가 다시 시작된다. 집단으로 묘안을 창출하는 브레인스토밍(brain storming) 사고 기법을 최초로 도입해 사건 실마리를 찾겠다는 계획이다.
우물서 떠오른 여성 알몸 시신
2006년 3월 14일 강원도 동해시 심곡동 약천마을 우물에서 여성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물이 좋기로 유명하던 마을,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 안에서 알몸 상태의 시신이 발견되자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 마을 주민은 우물 물줄기가 평소보다 약한 것을 본 뒤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입구를 열어봤다고 진술했다. 시신은 엎드려 웅크린 자세로 우물 위에 떠 있었다. 시신의 긴 머리카락 일부가 빠져 입구를 틀어막아 물줄기가 약해진 것으로 보였다.
시신은 누구일까, 왜 이곳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숨진 여인은 학습지 교사 김모(당시 24)씨였다. 시신으로 발견되기 일주일 전인 8일 오후 9시40분경 실종신고가 접수된 상태였다. 그의 마지막 행선지는 동해시 부곡동 한 연립주택으로, 학습지 가정방문 교육을 마치고 귀가하다 연락이 끊겼다.
김씨가 발견된 우물의 깊이는 1m가 채 되지 않는 비교적 얕은 곳이었고, 뚜껑으로 덮여있어 실족사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는 이곳에서 살해를 당했거나, 살해를 당한 뒤 이곳으로 옮겨졌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부검결과 사인은 경부 압박 질식사였다. 경찰은 실종 직후 누군가에게 목이 졸려 살해된 뒤 우물 속에 유기된 것으로 판단했다.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뒀으나 시신에서 남성의 정액은 발견되지 않았다.
김씨가 타고 다니던 ‘빨간색’ 마티즈 승용차는 시신 발견 다음날 오후 동해체육관 앞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차 안에서 그의 옷과 소지품이 발견됐다. 범행이 일어난 장소는 승용차 내부가 유력해보였다. 경찰은 김씨의 주변 인물부터 수사를 진행했으나 사건의 실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비슷한 사건 잇달아… ‘빨간 차’ 노린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연쇄살인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씨가 살해당하고 3개월 만에 비슷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같은 해 6월 1일 피해를 입은 여성은 괴한이 자신의 승용차로 기습해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고 진술했다. 남편이 고함소리를 듣고 달려나오자 그대로 도주했다. 같은 달 23일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세번째 피해여성 역시 자신의 자동차에 괴한이 쳐들어와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고 길거리에 그대로 버린 뒤 달아났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죽음을 면했으나 김씨의 사건과 어딘가 닮아있었다. 체구가 작은 여성이었고, 혼자 있었으며, 늦은 저녁 주택가 인근이었다. 사건 발생 지역은 모두 150m 이내로 비교적 가까웠고 승용차 안에서 범행이 일어났다. 이때 경찰은 자동차 색상에 집중했다. 세 여성 모두 ‘빨간색’ 승용차를 타고 있었다.
또 다른 공통점은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괴한은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이용해 폭행했다. 살아남은 피해여성 두 명 모두 주먹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우물 속에서 발견된 김씨의 몸에도 흉기로 인한 외상 없이 목에 짓눌린 압박 자국만 남아있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자 전직 프로파일러는 “범죄수법을 보면 범인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연령대가 낮은 남성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보통 시신유기 장소에서 더 멀리 도망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범인은 이상하게도 피해자를 처음 만난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단서다. 최초 범죄현장 부근에 거주하는 주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