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골목 성명’ 내고 달아난 전두환, 이번엔 고분고분

입력 2019-03-11 09:40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전 8시33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지법으로 출발했다. 11일 오전 8시33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나와 순순히 차량에 탑승했다. 재판은 오후 2시30분 광주지법 201호에서 열린다. 그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1980년 민주화운동 때 광주에서 대민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불구속 기소됐다.

24년 전과 달랐다. 전 전 대통령은 ‘5공 비리’(전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 비자금 조성)가 드러났던 1995년 12월 연희동 자택 앞에서 짧은 입장을 밝힌, 이른바 ‘골목 성명’을 내고 검찰 수사에 불응한 뒤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검찰은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은 뒤 전 전 대통령을 합천에서 붙잡아 경기도 안양구치소에 수감했다

‘5공 비리’는 그해 10월 민주당 소속 박계동 전 의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소환했고, 기업 총수 40여명으로부터 비자금 4100억원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노 전 대통령은 같은 달 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출두하고 구치소에 수감된 사상 첫 전직 대통령이 됐다.

문민정부 시절 재판을 받은 전두환(왼쪽)·노태우(가운데) 전 대통령의 뒷모습. 국민일보 DB

이 과정에서 신군부의 12·12 쿠데타와 5·18 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을 규명하라는 국민적 목소리가 높아졌다. ‘골목 성명’을 내고 달아난 전 전 대통령의 기만이 비판 여론을 키웠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이런 여론을 반영해 같은 달 5·18 특별법을 제정했다. 그렇게 신군부 수사는 전방위로 확대됐다.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을 위시한 신군부 핵심 인사 11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1996년 1월 전 전 대통령을 반란·내란수괴·내란목적살인·상관살해미수죄·뇌물죄, 노 전 대통령을 반란·내란중요임무종사·상관살해미수죄·뇌물죄를 각각 적용해 기소했다. 1심 공판은 무려 28회에 걸쳐 진행됐다. 그해 8월 전 전 대통령은 사형, 노 전 대통령은 징역 22년6개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당시 파란색 수의를 입고 수인번호 3124번을 붙인 전 전 대통령, 같은 옷에 수인번호 1042번을 붙인 노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손을 맞잡은 순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울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중요한 장면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전 8시33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그 뒤에 부인 이순자씨가 따라 나오고 있다. 김지훈 기자

전 전 대통령의 형량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해졌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1997년 12월 김 전 대통령이 ‘화합’을 명분으로 특별 사면하면서 풀려났다. 형량과 다르게 투옥 기간은 2년으로 짧았다.

전 전 대통령은 조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넘겨진 재판에 처음 출석하면서 별다른 저항 없이 차량에 탑승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미 지난해 8월 27일, 올해 1월 7일에 각각 열린 두 번의 공판기일에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광주지법은 전 전 대통령이 법원에 도착하는 대로 구인장을 집행할 계획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