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홋스퍼가 패배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세인트 메리스 경기장에서 열린 2018~2019시즌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얀 발레리와 워드 프로우스의 골을 앞세운 사우샘프턴이 2대 1로 토트넘을 꺾었다. 토트넘은 3위 추격을 허용했고, 사우샘프턴은 강등권 탈출의 청신호를 켰다.
지난 2월만 해도 ‘토트넘은 무난히 3위에 안착할 것이고, 첼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아스널이 4위를 놓고 다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프리미어리그 26라운드 일정을 마친 직후 토트넘은 승점 60점으로 3위였고, 4위 맨유는 승점 51점이었다. 3위와 4위 간 승점 차이가 무려 9점이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펼친 4경기에서 토트넘은 승점 1점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토트넘이 주춤한 사이 다른 팀들은 착실히 승점을 쌓았다. 만약 맨유가 다음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승점 61점을 기록해 토트넘과 동률을 이룬다. 5점 차 이상 승리를 거둘 시 맨유는 토트넘을 제치고 3위에 오른다. 아스널이 승리하면 승점 60점으로 맨유와 토트넘 턱밑을 추격한다. 3위에 가장 가까운 팀은 첼시다. 첼시는 2경기를 덜 치른 상태에서 승점 56점을 확보했다. 만약 다음 2경기인 울버햄튼과 에버튼전에서 승리한다면, 승점 62점을 기록해 단독 3위로 올라간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3위부터 6위까지 승점 차는 2점이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놓고 4팀 간의 경쟁이 점입가경에 빠지는 것이다.
토트넘 팬들은 ‘7년 전의 악몽’이 재현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2011~2012시즌 2월 초 토트넘은 무난히 3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2011~2012 프리미어리그 25라운드를 마친 토트넘은 승점 53점으로 3위였고, 4위 아스널과 승점 차는 무려 10점이었다. 하지만 당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파비오 카펠로가 사임하며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토트넘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해리 래드납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론은 ‘자국 감독 프리미엄’을 붙이며 래드납의 감독 부임설을 확산했다. 당시 래드납은 “토트넘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을 동시에 맡을 수는 없다”며 “6월 유로 대회가 있을 때까지 단기간 겸직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래드납이 거취를 확정 짓지 않으면서 토트넘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2011~2012 프리미어리그 26라운드 경기에서 아스널에 5대 2로 패한 뒤 13경기에서 토트넘은 4승 4무 5패를 기록하며 승점 16점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아스널은 남은 기간 8승 3무 2패를 쓸어 담아 승점 27점을 획득했다. 최종 결과, 아스널이 승점 70점으로 3위를 차지했고, 토트넘은 승점 69점으로 4위에 머물렀다. 토트넘은 4위를 했지만, 그해 첼시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거두며 유로파리그로 밀려났다.
지금 토트넘이 처한 상황이 7년 전과 몹시 유사하다. 첫 번째, 2011~2012시즌도 2월 중반부터 토트넘에 적신호가 켜졌다. 토트넘은 2012~2013시즌에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2013년 3월 초, 3위 토트넘은 5위 아스널에 7점 차로 앞서 있었다. 하지만 아스널은 또 한 번 무서운 뒷심을 발휘했다. 결국 토트넘은 5위로 추락했다. 5위팀 최초로 승점 72점을 획득했지만, 승점 73점을 기록한 아스널에 또 밀렸던 것이다.
두 번째, 2011~2012시즌과 2012~2013시즌의 아스널보다 더 무서운 기세를 맨유가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절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여론을 깨고 맨유는 어느새 토트넘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 부임 이후 맨유는 13승 2무 1패(챔피언스리그, 컵 경기 포함)를 기록하며 최고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첼시의 상승세도 만만찮다. ‘케파 사건’ 이후 첼시는 다시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주며 토트넘을 격파했다. 아스널도 꾸준히 승점을 쌓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토트넘이 맞닥뜨린 현실은 2011~2012시즌, 2012~2013시즌보다 더욱 가혹하다.
세 번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 부임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물론 래드납과는 약간 다르다. 포체티노는 자신과 레알 마드리드를 연결하는 언론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최근 패배를 거듭하자 “우승하고 싶다면 투자를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토트넘 팬들은 “만약 구단 경영진이 투자 요구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포체티노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토트넘이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했을 경우 주축 선수들의 이탈이 우려된다. 2011~2012시즌엔 루카 모드리치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2012~2013시즌에는 가레스 베일이 팀을 떠났다. 토트넘은 베일과 모드리치의 이적료로 로베르토 솔다도, 에릭 라멜라, 파울리뉴 등 굵직한 선수를 영입했지만 결국 4위로 돌아오지 못했다. 스타플레이어를 잃고 추락했던 역사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가장 이적 가능성이 큰 선수는 크리스티안 에릭센이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수많은 클럽이 에릭센을 노리고 있다. 해리 케인, 델레 알리, 손흥민도 다른 클럽과 연결되긴 마찬가지다. ‘DESK’뿐 아니라 얀 베르통언이나 위고 요리스 등 주축선수들과 포체티노 감독이 팀을 떠난다면 토트넘은 2013~2015년에 겪었던 암흑기에 다시 빠질 수 있다.
시련의 3월이 시작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토트넘은 A매치 기간 3주 휴식을 취한다. 무너진 수비 집중력과 무뎌진 칼날을 회복할 수 있을까. 오는 4월 1일 리버풀과 펼칠 ‘승점 6점’짜리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토트넘 팬들은 7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박준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