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대란에서 다시 보는 ‘박원순표 저감조치’

입력 2019-03-09 04:00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2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와 관련해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 위치한 차량 운행제한 상황실을 방문해 노후 경유차 단속 상황을 보고 있다. 뉴시스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가운데 서울시의 미세먼지 대책이 주목받고 있다.

새로 제정된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동되면 공공기관 차량 2부제,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 가동시간 변경과 가동률 조정, 건설 공사장 공사시간 변경·조정, 배출가스 5등급 경유차량 운행제한(영업용 제외) 등을 시행해야 하지만 지난 1∼6일 노후 경유차를 단속한 곳은 전국에서 서울시가 유일하다.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지자체들은 5등급 경유차량 단속을 위한 조례도 만들지 못한 상태다. CCTV시스템 등 단속체계를 갖춘 곳도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돼도 공공기관 차량 2부제만 적용하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노후 경유차 단속을 시행해 왔다. 서울시 기후환경본부는 1∼6일 노후 경유차 단속으로 서울시내 교통량이 23∼28%가량 줄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누구보다 먼저 미세먼지를 재난이라고 규정하고 과감한 미세먼지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대중교통 요금 무료 정책을 추진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앞서 혼자 추진해온 미세먼지 대책들은 지난달 제정된 ‘미세먼지 특별법’의 핵심 내용을 이루며 미세먼지 대응 매뉴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박 시장은 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환기하기 위해 2017년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000명의 시민들이 참석하는 ‘서울시민 미세먼지 대토론회’를 열었다. 박 시장은 “미세먼지가 심각한 재난이라는 걸 이 자리에서 선포하겠다”면서 “앞으로 서울지역에 미세먼지 고농도 시 서울시장 특별명령으로 독자적인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 혼자라도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하겠다고 한 것은 서울, 인천, 경기 등 3개 시·도가 모두 미세먼지 고농도 조건을 충족해야 발동되는 수도권 비상저감조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결정이었다.

서울형 비상저감조치의 핵심은 공용차량 2부제와 대중교통 무료 정책이었다. 이중 대중교통 무료 정책은 2018년 1월에 세 차례 시행된 후 중단됐다. 당시 박 시장은 “서울시는 지하철 무임승차에 연간 3400억원을 쓰고, 기후변화 대책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쓰고 있다. 내진설계에도 1000억원을 쓰고 있다. 비상 상황에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하루 45억원을 쓰는 게 왜 문제냐”고 정면돌파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사회적 동의를 얻지 못했다.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철회한 뒤에도 박 시장은 2018년 2월 말 다시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개선대책’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 자동차 배출가스 친환경 등급제 실시 등이 담겼다.

박 시장은 이어 차량 2부제를 민간까지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 초등학교 휴교령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서울시 혼자만 저감조치를 하는 것은 효과가 적기 때문에 동일한 대기영향권역에 있는 경기도, 인천시, 충청지역까지 포함하는 광역적 저감조치가 추진돼야 한다고 얘기했다.

서울시는 올해 또 다른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6월부터 녹색교통진흥지역으로 지정된 서울 사대문 안에 노후 경유차 통행을 상시 금지시키는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대중교통 무료만큼 논란이 클 수도 있지만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게 서울시 전망이다.

고농도 발생 당일만이 아니라 고농도 발생 시기 전체(예를 들면, 1∼3월)를 대상으로 장기적으로 저감조치를 시행하는 ‘미세먼지 고농도 시즌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지난 2년간 “미세먼지는 재난”이라며 “비상한 대책”을 촉구해왔던 박 시장은 최근 미세먼지 대란 국면에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아우성이 터져나오는 상황이라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오는 13일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처리하기로 한 상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