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황유미 12주기, 아버지가 합의하고도 투쟁 멈출 수 없는 이유

입력 2019-03-07 16:03 수정 2019-03-07 16:11
이하 뉴시스

황유미씨는 2007년 3월 6일 23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고 속초 집으로 돌아오던 길 아버지가 운전하던 택시 뒷자리에서였다. 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직감한 부모는 영동고속도로 갓길에 급하게 차를 세웠다. 사투를 벌이던 황씨는 눈을 감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숨이 멎은 딸의 눈을 살포시 감겼다. 그는 삼성반도체에 취업한 지 3년 5개월 만에 백혈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황씨가 떠난 지 올해로 12년. 아직도 가족과 동료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황씨 사망 12주기였던 6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 단체 ‘반올림’은 서울 조계사에서 전자산업 산업 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반올림은 2007년 황씨 사망 이후 삼성전자 등에 산재 책임을 계속해 물어왔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아버지 황상기씨는 “삼성과 중재안 합의만으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라며 “중재안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보살핌을 받기 위해서도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는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한 최종 중재안을 냈고 삼성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황씨가 세상을 떠난 지 4280일 만이었다.


보상 범위는 깐깐했다. 삼성은 ‘폭넓은 보상’을 약속했지만 질병 종류와 사업장, 진단 시기 등에 따라 제한적이었다. 신규 제보자 220명 가운데 62%인 127명은 보상에서 제외됐다. ▲반도체와 LCD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일했거나 ▲보상 대상이 아닌 다른 암에 걸렸거나 ▲병을 진단받은 시기가 보상 범위에서 벗어난 경우다. 삼성전자에서 일했더라도 호지킨림프종·다발성신경병증·뇌경색·크론병·식도암·침샘암 등 발병자는 보상받지 못한다. 아울러 삼성전자 반도체·LCD 외 사업부서, 삼성SDI·삼성전기 등 계열사, 삼성전자 해외법인, 비사내상주 협력사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포함되지 않았다.


반올림은 앞서 4일에도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은 전자산업직업병 피해자에 대해 신속히 산재를 인정하라”며 “12년째 아직도 제2, 제3의 황유미씨를 너무 많이 만나오고 있다”고 외쳤다.

실제로 지난 1월 29일 설 연휴를 한 주 앞두고 또 한 명의 젊은 청년이 백혈병으로 숨졌다. 32세 황모씨는 삼성SDI에서 화학물질을 개발하던 선임연구원이었다. 2014년 5월에 입사한 그는 2017년 12월 20일 급성골수성백혈병 발병 사실을 확인했다. 서울성모병원에서 골수 이식을 받았으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