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하기조차 하늘의 별 따기인 시대’
요즘 20대 취업준비생들은 인턴을 금(金)처럼 귀하다고 ‘금턴’이라고 부른다. 취직 전 인턴은 ‘필수사항’이 됐는데 금수저가 아닌 사람은 인턴조차 구하기 쉽지 않아 붙여진 자조 섞인 명칭이다.
최악의 청년 일자리 부족 사태 탓에 요즘 인턴 자리 얻기가 쉽지 않다. 정규직 전환이 안 되는 인턴조차 수십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취업하는 것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인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회사, 대학들은 ‘대학생 직무 체험’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는 대책을 세웠다.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참여한 이들은 대학생 직무 체험제가 인턴십을 가장한 노동 착취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최저시급도 안되는 80만원가량의 돈을 받으며 한 달 월급을 받는 직원들과 같은 업무량을 해내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식비와 교통비는 ‘알아서’ 감당해야 했다. 한 줄짜리 스펙만 아니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야근수당과 출장비가 뭐죠?
올해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한 권모(25)씨는 대학 4학년 때 취업을 준비하면서 학교에서 하는 대학생 직무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인턴이 아닌 교육생 신분이라는 게 다소 의아했지만 수료증도 받고 스펙으로 인정된다고 해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지원했다.
교육 관련 회사에서 보낸 두달 간의 직무체험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업무 특성상 지방으로 출장을 가야할 때도 있었지만 출장비는 없었다.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래 직무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학생들 교육에도 투입됐다. 설상가상 소속된 부서가 갑자기 타 부서와 통합되면서 일은 2배로 늘었다. 게다가 야근을 해도 교육생에게 야근수당은 없었다. 한국 회사가 싫어졌다는 권씨는 해외취업이나 자영업 창업 등 국내 취업 이외의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함께 교육생 프로그램에 참가한 디자인 전공의 학생도 “야근을 하지 않으려면 저녁을 굶어야 했다. 누가 다시 직무체험을 권한다면 절대로 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치마가 짧다고? 내가 봐줘야지” 중년 부장의 성희롱, 그래도 참아야 했다
또 다른 대학생 A씨(23)는 성희롱을 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패션 관련 회사에서 한달 동안 80만원을 받고 직무체험을 했다. 교육생 신분이었지만 교육 대신 실무 위주의 노동을 했다. 여기까지는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애써 이해했다.
하지만 악몽은 일이 끝난 후부터 시작됐다. A씨는 교육생 신분으로 참여한 회식 자리에서 “XX씨 치마가 짧다고? 그럼 내가 가서 한번 봐줘야지”라는 말을 들었다. A씨의 미니스커트를 보며 회사 직원들이 치마 길이를 언급하자 중년의 남성 부장이 이렇게 농담한 것이다. 당황한 A씨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장난식으로 넘어가는 부장의 말에 고작 ‘교육생’이었던 그는 수치스러움을 참으며 웃어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학교와 회사에 평가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직속 부장에게 밉보이지 않아야 했다.
A씨는 이외에도 사장과의 점심 자리가 ‘고문’ 같았다는 얘기도 했다. 사장은 어릴 적 했던 불장난부터 동물을 괴롭힌 이야기까지 영웅담처럼 떠들어댔다. 말대꾸는 하지 못했다. 그는 갑도, 을도 아니고 ‘교육생’ 신분의 병(丙)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대학생 직무 체험 제도는 학생을 위한 게 아니라 학교와 회사가 연계해 학생들을 노예로 부리는 제도”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지난해 11월 5일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를 한 결과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례의 상당수는 수습이나 인턴 등의 위치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509명 중 70%가량은 가해자가 ‘고위직·부서장 등 상급자이거나 선배’였다고 답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수습사원이나 인턴도 이처럼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법의 보호조차 받기 어려운 ‘교육생’은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저시급도 못 받아…내 생애 최악의 방학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김모(23)씨도 졸업을 앞두고 학교가 연계해준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했다. 주요 업무는 회사가 자체 개발한 교재의 표준화 작업이었다. 강의장 표와 교재를 제작하고 그 외에 영상 편집이나 엑셀 파일 작업, 강의 시 운영 보조 등의 역할을 했다. 회사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을 ‘좋은 경험’이라는 명목 아래 교육생인 김씨가 모두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월급은 최저시급에 한참 못미치는 월 80만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중 절반은 학교에서 지급한다. 회사가 주는 건 월 40만원밖에 안된다. 따라서 김씨는 사실상 일주일 치 급여를 받으면서 4주의 노동력을 제공한 셈이다. 구내 식당도 없고 식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점심, 저녁 식사를 밖에서 먹고 교통비까지 지출하고 나니 김씨는 자신이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버는 것인지,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방학 두 달 동안 자신이 ‘기계’가 된 느낌으로 노동력만 소진해야 했다.
고용노동부 청년취업지원과 관계자는 “대학생 직무체험에 참여하는 회사들은 교육생에게 실무를 시키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으며 성폭력 관련 사항도 사전에 회사별로 담당자를 정해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회사가 일반 직원들에게 시키는 일을 그대로 교육생에게 시킬 경우에는 “노동청 홈페이지에 민원을 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일반 직원이 하는 일을 교육생이 하면 최저임금법을 적용해서 노동청에서 정한 ‘최소 80만원’보다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가를 받는 교육생 신분으로 노동청에 진정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직장 내 성폭력 교육 또한 회사 전체 차원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고 지정자 위주로 이뤄진다. 성희롱 등과 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교육생은 회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회사에 과태료 처분 등 제재를 할 방안도 없다.
노동문제 전문가인 김성희 교수(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는 대학생 직무 체험에 대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최악의 값싼 인력 활용 제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교육생 신분이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없어 별도의 원칙이나 준칙이라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비슷한 사례로 공업고등학교 견습제도를 예로 들었다. “1년은 학교에 다니고 1년은 일을 시킨 이 제도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견습생들이 산재 사고를 자주 당했고 결국 폐지하는 수순을 밟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학교와 정부는 단순히 실적을 올리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교육 매뉴얼을 만들고 정당한 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신혜 인턴기자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