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여진구(22)는 인터뷰 내내 ‘처음’ ‘도전’ ‘성장’이란 단어를 즐겨 썼다. 지난 4일 10.9%(닐슨코리아)의 시청률로 호평 속에 종영한 드라마 ‘왕이 된 남자’(tvN)는 오랜 연기 생활을 꿈꾸는 그에게 그만큼 특별하고 소중한 무엇이었다.
“작품을 마치고 내가 변했단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었어요. 지금껏 여러 작품을 거치며 감정적 스펙트럼을 넓혀 온 느낌은 있었지만, 이번에 느낀 기분은 또 새로웠죠. 헛헛하더라고요. 새로운 스타일들을 시도해보며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물론 감독님과 선배님들께서 큰 노력을 쏟아주셔서 가능했던 것이기도 했고요(웃음).”
그도 그럴 게, 갓 스물을 넘긴 배우에게 1인 2역은 쉽지 않을 시도였을 테다. 설사 그게 특출한 연기로 아역 때부터 주목받아온 여진구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극에서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에 치여 광기에 사로잡힌 왕 이헌과 천출이지만 누구보다 낙천적이고 자애로운 광대 하선을 자유로이 오가며 흥행의 끌차 역할을 했다.
부담은 없었을까. 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진구는 “무섭기도 했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욕심이 더 컸다”고 작품을 선택한 계기를 털어놨다. 연기는 끊임없는 도전의 과정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도전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파격적이고 다양한 역할들을 지금 시기에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작보다 더 극명한 성격 대비를 보이는 캐릭터 설정도 매력적이었고요. 하선과 이헌이 어떻게 살아왔고, 왜 이 상태가 됐고,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촬영하면서 수없이 되뇌었죠.”
가장 부담이 됐던 장면은 역시 왕과 광대가 처음으로 맞붙는 장면. 상대 배우와의 리액션 없이 허공을 보고 연기하는 게 큰 부담이 됐다고 한다. 연기뿐 아니라 시선과 얼굴의 각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아주 세심한 작업이었다고. 특히 지금껏 맡아온 역할들과 달리 퇴폐적인 인상을 강하게 풍긴 이헌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쏟았다.
“이헌이란 인물이 잘못 표현돼서 단순히 이미지 변신을 위한 캐릭터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러웠어요. 어떻게 하면 캐릭터 자체의 서사가 더 돋보이고, 인물 이입이 쉬울 수 있을까 고민했죠.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에 치중하기보단 의도적으로 순화해서 표현을 했어요. 톤도 정통 사극과 퓨전 사극의 느낌을 합쳐보려 노력을 많이 했는데, 새롭게 잘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의 도전에 힘을 보태준 선배 배우들과 제작진, 그리고 극의 로맨스를 함께 이끌었던 상대 배우 이세영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영 누나는 굉장히 발랄하고, 밝은 에너지가 가득한 분이셨어요. 먼저 다가와 주시기도 했고, 신의 감정에 상관없이 현장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셨죠. 설렘을 느끼며 촬영할 수 있도록요. 선배님들과 감독님께서 저를 믿어주신 덕에 더 자신 있게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매 촬영이 수업이었는데, 상경 선배님께는 교수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습니다(웃음).”
영화 ‘새드무비’(2005)에서 염정아의 아들 역으로 데뷔한 그는 어느덧 15년 차 배우가 됐다. 그는 그간 첫 영화 주연작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를 비롯해 드라마 ‘해를 품은 달’(MBC·2012) ‘오렌지 마말레이드’(KBS2·2015) 등 다양한 작품을 쉼 없이 소화해왔다. 차기작도 벌써 결정됐다. 하반기 같은 채널에서 방송 예정인 ‘호텔 델루나’. 그는 극 중에서 엘리트 호텔리어가 돼 이지은(아이유)과 호흡을 맞춘다.
그는 “쉬는 것도 생각해봤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내) 다시 불태우자는 마음이 들더라”고 말했다. 몸짓과 말투에서 열정이 툭툭 묻어났다.
“강한 캐릭터랄까요. 이헌처럼 치명적이거나 다크하다기 보단 강한 추진력과 결단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내적으로는 부드러운 인간미가 있어요. 그런 새로움에 또 이끌렸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계기로 중심을 잡는 법을 알게 됐고, 저 자신을 더 믿게 됐습니다. 지금이 아닌 10~15년 뒤를 생각하면서 연기하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물이나 에너지 넘치는 외향적인 역할에도 계속 부딪쳐 보고 싶습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