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신청을 6일 조건부로 받아들인 항소심 재판부는 보석 허가 결정 외에도 이례적으로 당부의 말을 추가로 전달했다. 이 전 대통령의 석방이 ‘황제 보석’ 논란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350억원대 다스 자금 횡령 및 110억원대 뇌물 혐의로 1심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보석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항소심 재판부가 새로 구성돼 구속만기일(4월 8일)에 판결을 선고한다고 해도 재판부에게 고작 43일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며 “1심 재판부가 증인 신문을 마치지 못한 증인 숫자를 감안할 때 충실한 항소심 심리를 마치고 판결을 선고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보석 허가 ‘4대 조건’을 내세웠다. ①주거지는 자택으로 제한 ②배우자와 직계혈족, 혈족 배우자, 변호인 이외 접견 및 통신(이메일과 SNS 포함) 제한 ③매주 화요일 오후 2시 지난주 활동내역 보고 ④보석보증금 10억원 납입을 보석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 전 대통령 측에서 수면무호흡증 등 건강상 이유로 서울대병원도 주거지에 포함시켜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장인 정 부장판사는 조건부 보석을 허가한 뒤 이 전 대통령에게 추가 언급을 했다. 그는 먼저 “보석은 무죄 석방이 아니라 구치소에서 석방하는 것이다. 자택에만 머물러야 하고 외출도 금지되기 때문에 자택에서 구금됐다고 생각하라”며 “구속영장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되는만큼 보석조건을 위반해 재구금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말했다.
재판에 성실히 임할 수 있도록 하라고도 주문했다. 정 부장판사는 “자택에서 매일 1시간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해 건강을 유지하라”며 “형사재판은 현재의 피고인이 과거의 피고인과 대화를 하는 과정이다. 자택에 가서 기소된 범죄사실 하나하나를 읽어보고 과거 피고인이 한 일을 찬찬히 회고해달라”고 강조했다.
법원의 보석 결정을 받은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48분쯤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빠져나와 약 20분 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들어갔다. 측근인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과 지지자들이 ‘이명박’을 연호하자 차량 창문을 열고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이 풀려난 것은 지난해 3월 22일 구속 이후 349일 만이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